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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Jul 10. 2024

조금 다정한 손님이어도 괜찮아요.

인사를 건네는 마음

 오전 7시에서 9시. 엄마인 내가 하루 중 가장 예민해지는 시간이다. 8시에 출발해야 하는 초등학생 도담이는 잠만보라 "10분만"을 연발하지. 9시 반까지는 등원을 해야 하는 입짧이 도동이는 '밥퉤퉤'가 재미있지. 모성애를 넘어서는 다급함이 모든 신경세포에 가시를 세우게 한다. 이런 심장의 바운스는 오롯이 나의 몫이란 말인가. 잠과 똥과 밥. J형 인간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운 이변이 속출하는 시간이다.   


 심호흡이 필요하다. 나는 온화한 성정을 가졌다. 나는 모성애의 소유자이며, 지성인이다. 아이들은 원래 이런 것이다. 아침은 원래가 분주하다. 여름은 원래 덥다.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할렐루야, 아멘. 마인드셋을 수차례 하다 보면 어느새 등원을 완료했다. '하아, 긴 호흡으로 잠시 숨을 고른다.'


 사막에서 한 모금의 물을 찾는 나그네의 심정 비슷하게 카페를 향하여 달려간다. 아, 제발 내게 지금 커피를 주세요. 목이 말라요.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뻗어 드라이브스루에 손을 뻗으면 두 시간여의 분주함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카페인을 수혈하기 위해 고개를 쭉 뺐더니, 스타벅스 점원이 스피커 너머로 낭랑하게 말했다.  


  "고객님! 좋은 아침입니다. 늘 드시는 커스텀 대로 해드리면 될까요? 샷 추가에 저지방 우유 맞으시죠?"

  "앗, 하하. 아하하.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머리를 스치는 두 줄기의 생각이 있다.  '내가 너무 매일 왔나?' , '참 보기 드문 다정함이다.' 오전 시간에는 주차를 하고 매장에 들어가 커피를 받는 시간조차 아깝다. 드라이브 스루만을 애용하는 극효율주의자인 내가 건네받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은 끽해야 5초 남짓이다. 로봇팔과 로봇팔이 만나는 거나 다름없는 무감정의 커넥션. 나는 한 번도 "감사합니다" 이외의 말을 건넨 적이 없는데, 그 와중에 나를 기억해 주는 심쿵한 다정함을 만났다니.


 "어떻게 제 커스텀을 기억하셨어요?"

 "매일 이 시간 즈음에 오시잖아요. 자주 오시니까 닉네임과 커스텀이 눈에 익어서요."

 "아, 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우리는 서로 짧은 미소로 대화를 맺음하고 각자의 하루 속으로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입가에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친절한 직원을 만난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구나. 그런데 말이다. 아침 일찍 일하는 직원들도 다정한 손님을 만나고 싶을 것 같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상대의 친절과 자신의 무심함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손님의 바쁨과 차가움과 딱딱함은 익스큐즈가 된다고 생각하면서 직원의 미세한 표정변화와 불친절에는 상당히 민감한 우리일지 모른다.   


 작은 다정함이 필요한 시간은 어쩌면 바로 그런 때다. 쟁여두지 말자고 생각했다. 커피를 건네받는 그 짧은 순간에 좋은 하루가 되라는 말 정도 건네는 것.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에게 평소보다 조금 더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보다 뒤에 나오는 사람에게 5초쯤 문을 잡아주는 것. 골목길 보행자의 더딘 걸음에도 천천히 기다리며 가 주는 것.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짧디 짧은 다정함이 실은 가장 핫한 일이다.  


 다음 날 아침, 여지없이 커피를 사러 들른 카페에는 어제와 다른 직원이 주문을 받고 있다. 그녀는 평소에도 늘 하이옥타브 솔톤을 유지하며 기분 좋게 커피를 건네곤 한다. 오늘도 그녀의 톤은 가라앉지 않았다. 꼭 이 사람의 밝은 목소리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이야기해 줘야지. 어쩌면 오지랖일까 1초쯤 망설이다 커피를 건네는 그녀에게 말했다.   


 " 어쩜 늘 그렇게 밝은 목소리로 친절하게 커피를 건네주세요. 받는 제가 너무 기분이 좋아요. 고맙습니다."

 " 네...?! 어머나, 저 이런 칭찬 처음 들어요. 고객님. 어떡해. 저 오늘 하루종일 기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져 버린 직원이 양볼에 작은 손바닥을 대며 수줍게 웃었다. 나도 함께 웃었다. 5초만 허락되는 우리의 짧은 대화로 행복을 더했다니 살짝 으쓱한 마음도 들었다. 선을 넘는 너스레가 아닌, 적당한 다정함을 전달한 기분이다. 우리가 손님의 입장에 섰을 때, 좀. 살짝. 어느 정도 다정해도 된다 싶다. 내게 어떻게 서비스해 주나 두고 보자, 싶은 까칠함 보다 어떤 점이 좋았는지 생각해 보는 마음.


 경험상, 그렇게 해 봤더니 아주 괜찮다. '서비스를 받는 자로서의 친절함'을 장착하는 것은 추천할 만하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말이다. 말이 멋쩍으면 그냥 웃으며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정할 의무를 이행한 것이다.

(사진: pixabay)

 내일도 친절과 다정이 만나 맛있는 커피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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