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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Jul 26. 2024

아토피를 가진 아이의 엄마입니다.

잊고 있었다.

 "어머니, 도담이 지금 lge 수치가 400 가까이 나옵니다. 372에요. 엄청난 수치가 아니라 해도 유의미하게 높아져 있습니다. 성인 기준으로 봐도 100 이하여야 하는데, 지금 알러지 수치가 치솟아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피부가 크게 반응하게끔 피부 내부가 망가졌어요.

 그리고...  당독소 검사에서 수치가 상당히 높습니다. 약을 먹으면서, 피부 치료도 함께 해야 할 것 같아요. 몇 년 만에 왔는데 그 사이 뭔가 안 좋아졌네요. "

 "아... 네... 알겠습니다..."

 " 밀가루, 설탕, 튀김, 과자 모두 안 됩니다. 특히 밀가루는 지금 절대 안됩니다. 아! 잼 이런 거 먹이지 마세요. "

 "아... 네... 알겠습니다..."

 뜨끔하다. 그날도 병원 진료 가는 길, 시간이 촉박해 빵에다 잼을 발라 먹였다. 얼굴이 화끈해진다.


  3층에서 고요하게 출발한 엘리베이터는 1층 치료실 앞에 우리를 뱉어냈고, 광선치료와 피부 치료가 시작됐다. 긴장한 도담이를 애써 격려하면서, 쿨한 척 연기를 해댔지만 위기의 순간은 곧장 왔다. 면역주사를 링거로 맞아야 하는데 팔꿈치 안쪽 혈관이 약해 바늘 꽂기가 어려웠던 것. 꽂았다 실패하기를 여러 번, 아이는 병원이 떠나가라 아기처럼 울어댔고 간호사 두 분은 어쩔 줄 몰라했다. 링거를 맞지 않겠다고 우는 아이와, 혈관을 못 찾아 땀 흘리는 간호사를 먼발치에서 보고만 있어야 하는 답답함. 당장이라도 그만하고 집에 가겠다 외치고 싶지만, 이렇게 가면 아이의 치료는. 피부는. 어쩌라고.


 간신히 링거 맞기에 성공했고, 아이가 지쳐 잠이 들었다.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아무리, 열심히, 안간힘을 쓰고 참아봐도 댐에 물이 차올라 범람하듯 눈물이 흘러넘친다. 다행이었다. 근처에 뽑아 쓸 휴지가 있고, 커튼으로 가려진 공간에 우리 둘 뿐이니. 아이는 잠이 들었으므로. 조금은 울어도 될 것 같다.

고단했고, 눈물 젖었던 우리의 그날

 잊고 있었다. 아이는 어느덧 밥 보다 치킨을 좋아할 개구진 나이가 되었으니까. 이제 유기농, 무농약만 고집하는  유별난 밥상 보다 짜장면의 달콤함이 좋을 시기니까. 나도 좀 내려놓자. 나도 좀 살자. 그렇게 3년을 살았다.


 힘을 뺄 한 군데가 필요했는데, 하필 그게 너의 밥상이었나 보다. 뒤통수를 맞은 듯 머엉-하다. 아이는 치킨을 못 먹게 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눈물을 주르륵 흘려버리는데. 이제 어쩌지. 막막함과 먹먹함이 동시 다발로 마음을 후려치는 게 아닌가.


  도담이 피부에 트러블이 하나 둘 올라오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 둘째까지 데리고 먼 거리에 있는 병원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미루고 미뤘던 건 아닌지. 동생이 태어남으로 해서 도담이에게 대체 내가 어떤 홀대를 해버린 건지. 밥 대신 떡볶이가 먹고 싶다 하면 내심 반가웠다. 짜장면 먹을까 우리? 먼저 유도하기도 했다. 11살이니 이제 괜찮겠지. 생각했다.


 우리가 좋아 둘째를 낳아 놓고선 마치 첫째가 원해서 낳은 것인 양 포장한 건 아닌지. 그래놓곤 도담이에게, 이런 필수적인 부분에까지 소홀했던 건 아닌지. 마음이 아리고, 아프고, 미안함이 홍수처럼 쏟아져내린다. 눈물도 쉴 새 없이 흘렀다.


 도담이가 일어났다. 눈물을 들킬 새라,

 "엄마 수납하고 올게!"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 사이 조용히 화장실에 다녀온 아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말문을 연다.

 "엄마, 아까 나 화장실 가서 혼자 울었다? 엄마 수납하러 갔을 때."

  "응? 왜? 계속 아팠어?"  

  "아니.. 아까 나 봤거든. 엄마 우는 거.. 내가 아파서 우는 거잖아. 나 아픈 거 때매 엄마가 마음이 아파서 우니까 내가 너무 미안해..."

 

 쿵. 심장이 내려앉는다. 아이는 되려 본인이 아픈 것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구나. 마음이 녹아져 사라질 것 같다. 그런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맙게도.

 더 이상 감정에 젖어 있으면 안 되겠다. 아이가 더 울겠다. 오케이, 우는 건 여기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긍정적인 방향으로 키를 돌려야 한다. 어차피 평생 관리하며 지내야 할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이 안에서 해결해 나갈 방법을 찾아 제시하는 게 엄마인 내 몫이겠지. 다행히 도담이는 엄마 밥을 좋아하고, 나는 밥 해 먹이는 걸 좋아하니까.


 집에 돌아와 곧장 도마와 칼을 꺼내 들었다. 한동안 배달 어플에 자리를 내어 준 왕년의 용사들.

 

아이가 치료 시작 전, 마지막 치팅으로 먹고 싶다는 부대찌개. 야무지게도 먹는다. 마음 아프게.

 그렇게 우리의 먹고 쓰는 이야기, 다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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