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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Nov 25. 2023

엄마로서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어쩌면 어려운 질문이었다

도담아, 엄마가 해 주던 것 중에
더 이상 안 해줘도 되는 게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해 줄래?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는 어둑한 길, 도담에게 물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주로 차 안에서 꺼내는 편이다. 테이블을 마주하고 눈을 응시하는 것이 때로는 진심어린 대답을 방해할 때가 있지 않나. 무심한 듯 진심인 대화가 주로 차 안에서 오가는 우리다. 뜬금없는 엄마의 질문에 아이의 눈은 알사탕처럼 동그래졌다.      


 "엄마, 그건 왜? 갑자기? 해 주던 것 중에 안 해주고 싶은 게 있어?"    

  

 "아니, 엄마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쉬운 건 모든 걸 다 해주는 거야. 엄마는 지금도 도담이 씻겨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싶어. 매일 품에 넣고 다니고 싶어.

하지만 도담이가 조금씩 자랄 수 있도록 엄마가 돕기 위해서 그래.”

      

 이제 의미를 알겠다며 끄덕이는 도담이. 대답을 고르는 눈매가 제법 진지해졌다. 눈칫밥 먹인 적 없이 마냥 해맑게 키웠는데 도담이는 왜 이리 상대의 마음을 금방 알아채는지. 섬세한 아이라 가끔은 부담이 될 때도 있었다. 엄마의 의도를 금세 파악하는 아이. 기특하다 해야 할까, 측은하다 해야 할까.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이 드는 순간이다.

       

 "샤워하기, 수저 챙기기, 물통 챙겨 넣기. 음.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더라... 아! 책상정리. 이제 내가 할게. 내 빨래도 내가 정리해 볼게."

 빨래 정리까지? 오늘도 한 가지 늘었다. 엄마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도담이가 태어나고, 육아서를 베개 삼아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한쪽 겨드랑이에 끼고 살 정도로 열심히도 읽었다. 내가 서두른 건지 친구들이 느긋했던 건지 도담이가 태어났을 즈음에는 친한 친구들이 거의 다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기댈 곳은 인터넷과 책뿐이었다. 표류하는 정보보다는 공인된 글을 읽고 아이를 키워보겠노라, 육아서 읽기에 진심이었다. 당시 서점가에 어느 정도 팔린다 하는 육아서는 구입을 하든, 빌리든 어떻게든 읽었다. 책 덕분에 (지금 생각해 보면 유순한 아이의 성향 덕분이었는데) 영유아기 육아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 엄마가 체질이고 육아가 적성인가 오만한 자신감도 생겼던 것 같다.      


 도담이가 네 살이 될 무렵 육아서와 이별을 고했다. 주변에 이 책 저 책 추천하기 바빴던 나에게는 의외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열을 올려 읽더니 왜 절연했나. 주변에서도 물어왔다.  

    

육아서를 읽을수록 어깨가 너무 아파.
 

 목디스크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마음에서 부담을 좀 덜어내고 싶었달까. 한 아이가 잘 성장하는 데에 있어 엄마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너무 많다. 타고난 모성과 육아 과정에 생겨나는 모성 중에 어떤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지 모르겠다. 육아서에는 엄마의 모성을 시험대에 올리는 구절이 너무 많았다. 엄마가 반드시 해 주어야 하는 말들, 놀이, 요리, 발달체크 등. 넘쳐나는 TO DO 때문에 어깨에 돌덩어리가 얹어진 것 같았다. 엄마로서 해야할 것만 쌓이는 기분. 내 머릿 속은 이 질문으로 가득차 있었다.

지금 나는 뭘 더해줘야 할까




 내 모든 일차원적 욕구를 억누르고 헌신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단 말인가. 우리나라 저출산의 원인이 과도한 육아서 남발 때문일 거라고, 서점 한 칸을 가득 채운 책을 보며 생각한 적도 있었다. 육아에 있어 가장 큰 적은 부담과 자책감이다. 무거워진 어깨로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즐겁게 놀 수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래, 이제 그만 읽어도 되겠다. 이별하자 육아서.





 그 뒤로는 주로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 줄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래그래 힘들지, 괜찮다. 뭐 어때."류의 책 말이다. 내 의지가 뿌리 없이 흔들리는 것 같을 때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 엄마가 나무기둥도 아니고 좀 서툴러도 괜찮다." 다독여주는 글들을 찾아 읽었다. 육아 지식을 채우기에 바빴던 눈에 여백이 생기니 아이의 웃음이 들어올 자리가 생겼다.


'내가 뭘 더 채워주면 좋을까.'를 고민할 때보다 '아이가 자랐다. 내가 뭘 덜해줘도 될까.'를 궁리할 때 아이와 나는 더 행복해졌다. 채워주려 애를 쓸 때는 애가 닳아 못 살겠다가 덜어내려 하니 가벼운 마음마저 들었다. 도담이와 내가 마주 보며 웃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엄마표를 고집하지도, 100점 만을 바라지도 말자 다짐하니 보이지 않는 억압의 꺼풀이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최고의 육아는 더 할 것이 없는 육아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육아라 했던가. 아이에게 닿아있는 끈을 움켜쥐기보다 조금은 느슨하게 여유를 두는 것이 서로의 행복임을 믿게 됐다. 도담이는 기민한 성격의 아이가 아니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매우 느린 아이라 마음이 고될 때도 있지만 천천히 자력이 커지기를 기다려주는 것. 그게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아이를 위해 하는 것 중에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가 되면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꾸리겠지. 그게 결국 내 육아의 목표이자 도달점임을. 매일이 애틋한 나의 너를 떠올리며 너의 성장을 응원하며, 엄마는 기꺼이 매일 생각해야겠다.

                  

오늘 내 손으로 해 준 것 중에, 내일은 해주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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