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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Nov 21. 2023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있을까

학군지 라이딩에도 배울 점은 있어

 늦은 오후, 오늘도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나를 발견한다. 비학군지에서 아이를 평화로이 키우겠노라 호언장담했던 나였다. 그런 호기는 어디에 가고 내 몸을 실은 차가 대구의 대치동, 사교육 1번지 수성구, 무려 범어동, 그것도 KBS뒷길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건 아닌데~'라는 노랫말이 흥얼거려지는 순간이다. 도담이가 3학년이 되면서 이곳으로 학원을 옮겼다. 사실 선택은 간단했다.

        

 집과 너무 멀지 않은 위치라 라이딩을 해 줄만 하고, 무엇보다 신랑 직장이 바로 근처라 하원을 신랑이 전담할 수 있다는 점. 가장 큰 요인이다. 나름 평화로운 역할배당이었다. 문제는 등원과 하원의 딱 그 타임에 도로는 총알 없는 전쟁터라는 것이다. 규모가 큰 초 중 고등학교가 밀집해 있고, 학원이 초밀집된 곳이라 유동차량이 많은 데다 유치원 하원시간까지 맞닿으면 말해 뭐 하겠는가.  

 동네의 특성상 ‘전봇대를 박을 지언정, 저 차는 스치면 안돼’ 싶은 차량이 많고 골목이 좁으며 엄마사람 운전자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학에 들어가 곧장 면허를 따고 20년 간 거의 매일 운전을 했다. 조선팔도를 쏘다니는 내 별명은 한 때 나길동이었다. 때문에 웬만한 상황에선 방어 운전이 가능하다 자부했다. 하지만 이 동네는 골목골목이 지뢰밭이다. 언제 차들 사이로 나올지 모르는 아이들, 그보다 더 위험한 존재는 비싼 차량을 탄 미숙한 운전자. 거기에 마음까지 급한 운전자들이 모이는 시간이다. 나는 지금 위험한 곳에 있다.

 

 어느 날은, 한 차량이 깜빡이를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은 적이 있었다. 차에는 도담이와 도동이가 타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는 '이런 사발면, 육개장 사발면, 김치 사발면' 단어가 날아다녔지만 의연한 척했다. 라이딩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다급한 마음 이해 못 하는 바 아니지만 불쾌했다. 미안하다는 깜빡이조차 없는 차량을 보더니 나름 '정의의 아이' 도담이가 외쳤다.

 “ 와! 엄마! 저 차 너무하는 거 아니야?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야? ” 아이는 다소 흥분해 있었다. 이런 걸 신고할 수 있다는 건 또 어디서 알았을꼬. 그 순간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도담아, 저 사람 지금 똥 마려워.


 "엄마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도담이는 지금 내가 뭘 들은 거냐며, 엄마가 화장실 가고 싶어 그러는 거 아니냐며 어이없어 깔깔 웃었다. 그래 우리가 웃었으면 됐지 뭐. 성격이 급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지만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면서 매번 저런 일에 우리의 기분을 망칠 수는 없다. 이 차 안에는 가장 무서운 네 개의 귀가 함께이지 않은가. 사발면이나 말고 있을 수는 없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을 때, 언짢은 마음과 달리 상대를 이해하는 '척' 해보면 의외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정말 이해해서가 아니라 붕어처럼 입으로만 이해하는 '척' 버끔 거려 보는 거다.

(사진: pixabay)

 그 후로도 종종 운전을 하다 짜증스러운 일을 겪으면, 차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상황을 상상한다. ‘아이 하원시간이 임박한데 늦어서 마음이 너무 급한가 보다’ ‘저 사람 오늘 회사 상사한테 엄청 까였나 보다.’ ‘ 퇴근 중이라 배가 엄청 고픈가 보다’ ‘ 저건 아빠 차 빌려 나와 서툰 걸 거야.’ 등등. 가끔은 도담이와 서로 더 재미난 상황을 떠올려보자며 내기를 한다. 그렇게 오고 가다 보면 어느새 즐거운 라이딩길이다. 어쩌면 공감은 상대 보다는 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마음 편한 길인지 모르겠다.

 

"나는 너의 상황에 공감해, 너를 이해해." 우리는 그 순간 상대를 얼만큼 이해하고 있는 걸까. 전화통화를 하거나 모임 자리에 가서 상대가 하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래그래, 나라도 그랬을 거야."하는 말에는 몇 프로의 공감이 들어 있을까. 가끔은 그게 껍데기 공감이라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추임새가 없는 대화는 싱겁기 짝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껍데기 뿐인 이해에서 시작해 알맹이를 채워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진정으로 상대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이해하는 척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역지사지에 다다르겠지.

(사진:pixabay)

 열 길 물 속보다 어렵다는 인간의 특성을 16가지로 나누는 요즘. 내 아이가 MBTI의 F형인지 T형인지 구분해 볼 수 있는 질문이 유행했다. "엄마가 속상해서 빵을 샀어."라고 했을 때 나오는 아이의 대답으로 F와 T를 알 수 있단다. 그 순간 나오는 대답이 정말 그 아이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걸까. F형 인간의 전형이라 해도 그닥 공감되거나 궁금하지 않을 수 있다. F니 T니 상관없이 "왜 속상했어?" 물어봐주길 기대하는 것 아닐까. 이 질문이 유행한 것도 결국은 공감에 대한 갈증이지 싶다.

 

(사진: pixabay)

 코로나 3년을 지내오면서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훌쩍 멀어진 것 같다. 만남보다는 전화가, 전화보다는 메시지가 편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표정과 감정을 배제하고 문자로 만나는 게 편한 관계가 느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공감을 필요로 하는 시기인 것 같은데 말이다. 공감의 소멸시대라고 하면 좀 과장된 걸까. 이대로 내 마음이 소멸되게 둘 순 없고, 껍데기 공감이라도 연습부터 해 보자. 어려운 것 말고 일단 가장 쉬운 단계부터 추천한다. 꽤 효과가 있다고 자부한다. 핸들을 잡고, 복잡한 시간 붐비는 도로에서 "왜 저래?" 싶은 운전자를 만났을 때 사용해 보길.



저 사람은 지금 너무 똥이 마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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