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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Nov 15. 2023

무심히 건넨 접시에 내 사랑이 있어

- 나리 키친 영업 중입니다

밥 먹자!

 어릴 적 엄마는 너무 바빠 평일엔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일주일에 딱 서너 번의 식사를 같이 한 것 같다. 하이라이트는 일요일 아점. 오전 11시 즈음이 되면 우리 집 거실에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방송이 시작되는 소리가 들리고, 밥 먹으러 오라고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 즉시! 착석하지 않으면 (체감상) 5초에 한 번씩 이름을 불렀다. 데시벨이 30쯤으로 올라가다가 3번째쯤이 되면 "안 먹지! 먹지 마!"가 들려온다. 위험 시그널이다. 바로 이불을 차고 달려가 수저 놓기, 물 따르기, 반찬 나르기 등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1분의 여유는 20분의 비극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엄마의 독촉이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는 늘 찌개가 다 끓기 전에 나를 불렀기 때문. 왜 밥이 다 되지 않았는데, 그토록 애타게 부르는지. '난 아침 안 먹어도 되는데, 조금 더 자고 싶은데,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싶은데.' 투덜대기도 했다. 물론 엄마에겐 들리지 않을 내적 목소리로 말이다. 앉았다 하면 한 그릇 뚝딱할 거면서.

      

어느 날엔가 먹었던 나리키친 집밥

 자, 그러던 내가 이제 사이렌의 주인공이 되었다. 민방위 사이렌은 소리도 아니라는 나의 데시벨. 뭐든 겪어보지 않은 자는 입을 뗄 자격이 없다. 엄마가 당시에 왜 찌개가 덜 끓었는데 우리를 불렀는지, 그토록 식기 전에 바로 먹어야 한다고 종용했는지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조리가 끝날 즈음에 모두가 와서 접시를 나르고, 상차림을 도우면 더 따끈하고 맛있는 식사를 빨리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담이는 예전의 내가 그랬듯이 살짝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나마 열심히 수저를 나르고 있다. 난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구. 엉성하고 귀여운 녀석.  

       

 요리는 재료를 구입하면서부터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 냄비에 넣고 끓이는 과정은 조리의 한 부분일 뿐.  장 본 것들을 꺼내 씻고 다듬어 쫑쫑 썰거나 다져서 조리를 준비하는 그 시간이 주부에겐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내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말의 의문을 갖지 않는 것은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실 재료를 구입한 날 정리해 두는 건,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이다.

 요리야말로 상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위다. 재료를 사서 다듬고 순서에 맞게 넣고 끓여 간을 맞추는 과정은 오로지 짧은 한 순간을 위한 것이다. 상대가 첫 입을 넣었을 때, "우와, 맛있다!"라고 하는 그 찰나의 행복 말이다. 결혼을 하고, 서툰 요리를 시작했을 때 분명 간이 맞지 않는 요리임에도 신랑은 참 열심히도 맛있었다. 엄지는 이때 쓰려고 키워둔 것마냥 식사 내내 쌍따봉을 날렸다. 새내기 주부에겐 그만한 상은 없었다. 주변에도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내의 김치찌개는 국보급이라는 둥 (신랑 친구네가 놀러 와서 그 소문은 사실무근이었음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나리키친이 열린다는 둥. 기분 나쁘지 않은 수식어들을 붙여줬다. 덕분에 주변인들에게 우리 집 주방이 나리키친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제 국자를 거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리키친 주야간으로 영업할 때의 흔적들

 지금 생각하면 살짝 신랑에게 조련됐나 싶은 마음이 들지만, 뭐 어쩌겠나. 이미 그의 셰프가 되어 있는 것을. 그도 나에게 훈련되었다. 요리 냄새가 부엌에서 나면 슬금슬금 걸어오면서 이미 입모양이 "우"하고 온다. 냄비 뚜껑을 열면서 "와"만 하면 “우와!”가 완성되는 것이다. 파블로프는 개를 혹사시킬 게 아니라 우리 집에 와봤으면 됐을 것을, 불쌍한 강아지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참 힘든 시간이었지만 딱 한 가지. 우리에게 선물한 것도 있었다. 우리 가족이 함께 한 집밥의 시간이 많았다는 것, 중식 제공이 중단되면서 신랑이 도시락을 싸다니게 된 덕분에 김밥 싸는 재미도 쏠쏠하게 느꼈다는 것 말이다. 긴 편지를 쓰지 않아도 구구절절 사랑을 읊조리지 않아도 신랑과 도담이(당시엔 도동이가 없었으므로)는 내 마음을 고스란히 느꼈을 거라 믿는다.

남편이 제일 좋아했던 도시락들

 장난이 많은 부부라 늘 아웅다웅하며 지내는 우리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보면 서로 입에 넣어주고 싶어 못 산다. 아직! 우리의 사랑은 쓸만하다 싶다. 별 것 아닌 반찬이나마 가지런히 차려서 집밥 한 끼 먹는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근사할까. 도동이를 임신하고부터 주춤해진, 아니 휴업상태였던 나리키친을 다시 열어야겠다 생각했다. 이건 다 배민 때문이라고 남 탓을 한 번 해본다. 배달의 민족은 정말 고마운 존재인 동시에 요리욕구를 무너뜨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제 마음을 다잡고 도동이와 도담이에게 엄마의 집밥상을 만나게 해 줘야지. 요태기여 안녕.


  나리 키친 재오픈합니다. 우리 가족분들의 많은 이용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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