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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Dec 08. 2023

오늘을 살리는 5분

 "이.도.다아아아암 ! 기어이 오늘 지각 한 번 할까?"      


 오늘 아침도 우리 집에 사자 한 마리가 출몰했다. 왜 매일 5분 더 일찍 일어나는 것 같은데 5분만치 더 다급해지는지 모르겠다. 늘 허둥지둥인 이유를 찾을 심적 여유도 없다. 대개는 도동이가 변수 역할을 담당한다. 출발 직전 대차게 응가를 하거나, 옷을 안 입으려고 드러눕거나 하는 식이다. 거기다 도담이가 밥을 10초에 한 번 씹는다거나 하면 5분 정도는 가짢게 소비되는 아침이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하지만,  현실은 노세수, 노머리감, 노렌즈의 자연인이다.

 

 우아한 아침이 되려면 아직 좀 멀다. 다리에 힘 빠지기 전에 여유가 생기면 다행이다 싶다. 바쁜 등굣길에 엘리베이터를 때 맞춰 잡아 타는 것은 아주 중요한 미션이다. 내일 출발해도 무방할 것 같은 아이들을 재촉해서 대문 앞에 세워두면 1차 미션 완료다. 습습후후 한 번 하고. 때마침 내려오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면 다음 미션 클리어다. 오전 8시. 이른 듯 이르지 않은 우리의 아침 풍경.


 가끔은 '이렇게까지 허덕이게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키워서 훗날 내게 남는 감정은 뭘까' 의문이 들지만 그런 의문도 현재로선 사치다. 하는 것 없이 바쁘고, 그 와중에 마음은 또 매우 심심한 상태의 모순적 생활이랄까. 그게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오묘한 심리상태일 거다. 본인이 하고픈 모든 욕구를 차치하고, 아이의 것이 우선이 되는 생활. 고달프다 생각하며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쉬운 것이 육아맘의 현실. 내 긍정마인드에도 위기는 자주 찾아온다.


 웃음소리가 호방한 탓인지 유쾌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편이다. 어느 날은 종종 통화를 하는 대학 동기 친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넌 전화를 할 때마다 즐겁냐고. 비결이 궁금하다고. 행복해 보인다고 말이다. 나라고 어찌 속상한 일이 없을까. 육아 일상이 어찌 즐겁기만 할까. 그런데 내가 다소 즐거워 보였다면 이유는 뭘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나를 다시 일으키는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생각했고, 깨달았다. 그 웃음의 시작은 대단히 창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침 8시의 엘리베이터임을.

(사진:pixabay)

 매일 아침 헐레벌떡 대문을 나서면 나 못지않게 서둘렀을 이웃들을 태우고 엘리베이터가 내려온다. 13층에서 예준이와 엄마를,  11층의 총각을 , 8층에서 운동 가시는 노부부를 , 7층의 등교하는 꼬맹이 숙녀 둘을 태우고 내려온다. 무거워진 몸으로 우리 층에 딩동! 문이 열린다. 도담이, 도동이, 나까지 태우고 나면 배가 빵빵해지는 엘리베이터다. '8시의 단골들. 오늘도 무사히 굿모닝 세이프 하셨군요!'      

 

 문이 열리면 어설피 아는 얼굴들이 한 귀퉁이씩을 도맡아 서 있다. 가운데 자리가 동그랗게 남아 있으면 그곳을 우리 셋이 채운다. 어색함이 80을 차지한 공기에 아기 웃음이 섞인다는 건 모두에게 반가운 일인가 보다. 해맑다 못해 천방지축인 아기 도동이를 얼마나 반겨주시는지. "날씨가 많이 추워졌죠?" " 도동이가 며칠 새 또 많이 컸네." "어머머 인사도 하네 이제."와 같은 일회적이고 캐주얼한 인사를 나눈다.


 우리는 그렇게 지하까지 내려가는 15초쯤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사이다.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때 5초쯤 설레는 것까지 합하면 20초쯤의 설렘을 주는 시간이다. 이런 만남이 하루에 서너 번이면 1분쯤 설렘이 선물되는 것이다. 어색하고 냉랭한 공기를 깨뜨리고 웃으며 인사를 나누면 짧고 반가운 시간이 된다.  


 생각보다 착착 신호를 잘 받아 1,2분쯤 등교 시간을 줄이면 1분쯤 기쁘고, 사랑한다고 인사를 건네는 도담이에게 20초쯤 설렌다. 커피를 사러 간 카페에서 환하게 인사를 건네며 내 커스텀 주문을 기억해 주는 점원을 마주했을 때 10초쯤 행복하다.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하면 박스를 해체하는 30초쯤이 두근대고, 읽고 싶던 책이 도서관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으면 1분쯤이 기쁘다. 주차장에 소위 꿀자리가 남아 있으면 10초쯤 행복. 한 방에 주차가 아름답게 성공하면 또 10초만치 자신감이 솟는다. 그렇게 모인 설렘의 조각이 모여 하루를 지내는 기운을 준다.


 23시간이 고단하고 속상해도, 그렇게 조각의 행복이 한 시간만 쌓이면 또 그럭저럭 감정이 정화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닥 큰 무언가가 아니다. 오랜만에 카페에서 글을 쓴다고 했더니 동료 작가분이 조각케이크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어? 이게 뭐지?' 싶을 때 온 메시지. 오랜만에 카페에서 글 쓰는데 케이크가 빠지는 건 동료 작가로서 용납할 수 없단다. 온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카페에서의 두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하루치 행복을 용량초과 상태로 만들어 준 그녀다. 작은 행복이 큰 행복임을 깨닫는다.   


(사진: 네이버 tv 나의 해방일지 15화)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나의 해방일지 15회. 염미정 대사 중에서                 


열심히 설레보자. 딱 5분만. 아니 1시간만. 그게 내가 인생을 살아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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