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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Dec 02. 2023

엄마가 해 준 멸치가 먹고 싶어

나이 듦에 대하여

 도담이가 깁스를 푸는 날이다. 대기실은 오늘도 만원이다. 꼬질꼬질한 반깁스를 후루룩 풀어주면 나의 한 달 손 수발도 끝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것에 비해 대기실은 고요했다. 으레 이만치 기다린다는 암묵적인 동의. 대기실의 눈들은 최면에 걸린 듯 각자의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고, 이따금 소거되지 않은 게임음이 들려올 뿐이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도담이와 나는 어플의 힘을 빌어 커플 셀카를 백 장쯤 찍는 중이었다.

 

 고요를 깬 건 한 가족의 대화소리였다. 노부부와 아들. 진료를 막 끝내고 나온 그들은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꽤 긴 대화가 오간 것 같은데 어디가 안 좋아 오셨을까. 귀가 좋지 않은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했고, 아들도 덩달아 큰 소리로 답했다.  들숨 날숨뿐이던 공간에 말소리가 채워지고 있었다. 80대 중반? 후반쯤 되셨을까.


 "수술이 안된대?"  눈썹과 머리칼에 하얗게 세월의 눈이 내려 앉은 아버지는 사뭇 간절해 보였다.

"아니요, 아부지. 수술이 안 되는 게 아니고 하지 말자는 거지." 아들은 이따금 머뭇하며 대답했다. 손에 든 약봉지의 모서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슥슥 매만지며 사뭇 곤란한 모습이다. 아버지를 보는 듯 보지 않는 애매한 시선처리. 어디쯤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 어깨가 이래 아픈데 와(왜) 수술을 안 한단 말이고." 알지만 모른 척 다시 한번 묻는 듯한 그의 말투.

"아버지, 어깨에 석회 같은 게 생기고 연골이 닳은 건데 아버지 연세에 전신마취하고 수술을 우예 합니꺼. 못해요. 그러니 그냥 아플 때 와서 약 받고 주사 맞고 찜질이나 좀 하면서 지내야지요."

"아.. 그래..? 어깨가 매일 너무 아파가 잠을 못자는데.아.. 그렇구나..."

그렇게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는 잠시 소강상태였다.

"좀 더 큰 병원에 가봐야겠구마. 그라마 고칠 수도 있는가?" 아버지가 한 번 더 용기낸 듯 물었다.

"큰 병원 가도 안 돼요. 아부지. 나이가 많아서 수술이 안될 거예요. 아마.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나아요."

 "........"

"주차장에 가서 차 가지고 올게요. 여기 계세요. 추워요."


 당장이라도 수술을 하고파 하는 할아버지의 눈빛. 그 마음을 애써 외면해 보려는 아들의 표정이 묘하게 교차했다. 아버지도 아들의 마음을 읽은 듯 체념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치료는 안되는구나. 고칠 수 있지만 나는 나이가 많아 어쩔 수 없구나.  

(사진:pixabay)

 아들을 기다리는 동안 노부부는 나와 도담이 옆에 앉으셨다. 키가 크고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는 듬성해진 옆머리칼을 단정히 빗어 모자를 눌러썼다. 머플러를 ㅅ자 모양으로 묶어 점퍼 안에 곱게 넣은 모양새가 부인의 정성을 알게 했다. 꼿꼿하게 걷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부인의 손을 잡고 느릿하게 한 걸음씩 겨우 내딛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서도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계셨다. 손등을 연신 쓰다듬는 것은 본인의 체온으로 남편을 위로하는 할머니의 마음이었다. 바라보고 있으니 콧등이 시큰해졌다.


 '거 참.. 거..아들도 너무하네. 더 큰 병원 한 번 모시고 가보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똑같은 상황이 주어졌을 때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전신마취는 노인에게 무리일테고, 강한 약물에, 입원에 재활에. 과연 그게 아버지를 위한 것인지. 의사도 말리는 수술을 아버지가 원한다고 해서 강행할 것인지. 우리 모두는 똑같이 고민할 게 뻔했다. 아들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6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그렇게 가기 싫다 하시던 요양병원에 잠시 계셔야 했던 때가 있었다. 엄마는 하루 걸러 할머니를 뵈러 갔다. 우리 집에서 한 시간 남짓의 거리. 어린 도담이를 데리고 가면 휠체어를 탄 할머니 앞에서 재롱잔치를 했다. 마당을 산책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 이상은 할 수 있는 게 없던 그 시절, 차 안에서 엄마가 혼잣말처럼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리야, 이 세상에 가장 서러운 게 뭔지 아니. 바로 늙는 거란다."  

 

 손 쓸 방법 없는 시간의 속도에 인간은 속절없이 당하고 마는 것이다.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도 흘러가고 있다. 올해로 칠순이 되신 시아버지. 곧 칠순이 될 우리 엄마. 몇 년 뒤에 칠순이 되실 시어머니까지. 칠순이라는 나이는 참 애매한 숫자다. 너무 늙지도, 너무 젊지도 않은 나이. 생각하기 나름인 연세인 것 같다. 남편은 부모님을 굉장히 연로한 노인으로 여긴다. 어디 나가시기만 해도 아이가 집을 나간 듯 전전긍긍 조심하라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한다.  

(사진:pixabay)

 우리 둘이 가진 마음의 시작점은 '부모님을 위한 것'이지만, 생각의 차이는 작지 않다. 신랑의 과도한 노인네취급이 문제라면, 나는 또다른 방면으로 문제다. 엄마가 여전히 이팔 청춘인 줄 착각하고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부탁을 해대기 바쁜 딸이기에. 어떤 게 더 적확한 마인드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떤 게 더 효도에 가까운 건지 말이다. 나이만큼이나 애매한 우리의 마인드.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이 듦의 서러움을 최대한 늦게, 천천히, 적게 느끼게끔 해 드려야 한다는 점이다.  '나도 아직 건재하구나.'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자주 느끼게 해 드리는 것이 우리 자식들이 할 수 있는 '우선의 최선'일 터.


 나는 그저 내 식대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말해야지.

"여전히 곱고 젊은 우리 지여사님!  엄마가 해 준 바삭한 멸치 반찬이 오늘따라 너무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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