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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Dec 16. 2023

술 펐고, 슬펐던 밤

- 아빠를 떠올렸어

 초등학생 때, 딱 한 번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좋은 사람이고, 멋진 사람이지만 내게 조금은 어려운 대상이었기에 질문을 하기 전에는 마른침을 두 번 꼴깍대야 했다.

 

 나: 엄마, 아빠는 왜 돌아가신 거예요?

 엄마: 그런 건 묻지 마.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까.


 그리고 남은 식사 시간 동안 식탁에는 수저가 그릇을 긁는 소리만이 남았다. 그렇게 냉정하게 내 용기를 잘라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훗날 어른이 되어 생각하니 엄마는 두려웠던 것이다. 그날의 상처를 곱씹는 것이. 그리고 그 아픔을 어린 우리에게 설명하는 것이. 나는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엄마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빠는 내게 물음표 같은 존재였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엄마에게 혼이 나면 아빠가 데리고 나가 맛있는 걸 사주고, 재밌는 놀이공원을 같이 가고, 외식을 한다고. 이따금 엄마 아빠가 다투고 나면, 화풀이 비슷하게 자기네를 혼내는데 그 말들이 짜증 난다는 둥. 중고등학교 시절 아빠는 친구들 이야기의 단골 소재였다. 그럴 때면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맞장구 비슷한 걸 쳐가며 같이 웃었다. “나도 그래.”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사진:pixabay)

 우리 집에는 아빠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있었다. 금색 테두리를 한 B5사이즈. 사춘기 소녀가 품에 안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그 액자를 이불에 넣고 잔 적이 몇 번 있다. 주로 엄마에게 꾸중을 듣거나, 속상한 일이 있는 날이었다. 그립지는 않은데, 그리운 것도 같은 야릇한 감정이었다. “아빠는 왜 우리를 이렇게 빨리 떠나서..”라는 혼잣말을 하다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아빠가 있으면 우리의 가정이 조금 더 포근할 것만 같았다.

      

 스무 살이었던 어느 일요일 아침. 식사를 하다 문득, 정말이지 불쑥 질문을 던질 용기가 생겼다. 아빠의 사고에 대해 한 번 더 물었다. 그런데 엄마가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심장이 요동친다.

      

 엄마: 그날은, 여름이었고 비가 왔던 것 같아. 저녁 즈음에 나는 너희를 재우고 있었지. 퇴근을 하고 들어온 너희 아빠가 직장 동료들과 술을 한 잔 하고 오겠다더라고. 나는 아기들을 재우는 중이었기 때문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인사를 했지. 너희와 함께 설핏 잠이 들었었나 봐. 그러다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어. 새벽 1시? 2시쯤이나 됐을까. 병원이라고 하더라. 교통사고가 났다고, 빨리 오라고. 전화를 끊고 나는 너무 무서워 손이 떨리고, 발이 떨어지지 않아 근처에 살던 너희 외삼촌에게 전화를 했어.


 엄마: 무슨 정신으로 달려갔는지 기억이 나진 않아. 아무튼 병원으로 달려 들어갔더니 거기에 너희 아빠가 누워 있더라. 죽을 사람 같지 않았어. 외상이 크지 않았거든. 그런데 머리를 너무 크게 다쳐 곧 숨을 놓았다고 하더라. 손 써보지도 못했지. 그렇게 너희 아빠를 보냈다.


 엄마: 난 무서움을 많이 타서 밤이면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했어. 너희 아빠가 꼭 일어나서 함께 가 줬지. 그런데 참 이상하지. 영안실에 가서 너희 아빠의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오는데 내 몸 안에 있던 무서움이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사라졌어. 그날, 딱 그날 이후로 엄만 무서움을 몰라. 마치 너희 아빠가 나의 무서움증을 모두 가져간 것만 같았어.

 

 엄마: 그런데 있잖아. 너희 아빠가 그렇게 가고 엄마가 제일 슬펐던 게 뭔지 아니? 어린 너희를 돌보느라 너희 아빠에게 따뜻한 밥을 많이 해주지 못했던 거. 맨날 빵만 주던 내게 너희 아빠는 “원래 빵을 좋아해.”라고 웃어주던 사람이었다는 거.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팠어.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었단다. 나리야, 네 똥기저귀도 손수 갈며 얼마나 너를 예뻐했는지 모른다.

     

 길고 긴 내 물음표가 끝나던 날이었다. 팩트와 덜 팩트인 이야기가 있다 해도 상관없었다. 조금 슬프고, 조금 행복했던 대화로 기억에 남았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싶었나 보다. 담담한 엄마의 자기 고백이었다. 나는 이제 아빠를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기억의 서랍에 이 이야기를 담아둔 채 살았다. 꺼내어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은 없었다. 20년이 그랬다.

      

  어젯밤 동글씨가 연말 술자리에 갔다 이제 출발한다는 연락이 온 뒤에, 두 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는 설풋 잠이 들었고 어머니의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심장이 덜컥했다. 시어머니는 집에 간다던 아들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연거푸 내게 전화를 하셨다. 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거듭된 통화 소리에 도동이는 잠이 깨 울었고, 컴컴한 거실에 앉아 아기를 달래며 전화를 하는데, 통화음만 있고 동글씨의 목소리는 없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 화는 걱정으로, 걱정은 불안으로 이어졌다. 신랑이 술집 앞에 세워둔 본인 차에 앉아 잠이 들어있다는 동료의 연락을 받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엄마의 그 이야기가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화가 나야 할 상황에 화는 나지 않고 그냥, 조금 울었다.

        

어디에도 꺼내본 적 없던 아빠의 이야기를 쓰게 한 어제의 밤.

당신은 술 펐고, 나는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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