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서랍장 정리 편
(대문사진:pixabay)
나는 정리에 서툰 사람이다. 아니 이 무슨 독자를 우롱하는 소린가. 정리를 사랑한다며, 미미하게 정리하며 산다고 연재까지 하는 사람이 할 소린가. 그러나 사실이다. 적어도 아기 옷에 있어서는 한없이 소극적이다.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면 이내 다시 서랍장에 넣고 마는 저장강박자에 가까웠다. 적어도 둘째 도동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런 내가 조금 변화한 건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다. 추억이 사라져 버릴까 봐, 혹시나 물려주게 될까 봐, 꺼내 보고 싶을까 봐 모아두고, 아껴두었던 옷들은 8할이 종량제 쓰.봉 속으로 들어갔다. 진작 물려줄 곳을 찾아볼걸.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는 재활용의 기한 또한 다한 것 같다.
잠정적으로 가족계획이 완성된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쌓아두지 않기로 했다. 방치하는 옷이 없이 쓰임새가 있는 것들로만 서랍장을 채우자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 아기옷을 시즌별로 부지런히 정리해야 한다. 무조건 다 버리라는 게 아니라 쓰임에 맞게 정리하고, 도동이에게 쓰임이 다한 것은 적당한 방법으로 새 친구에게 안착시켜 주어야 맞다.
여기까지 읽은 이들은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기 옷! 손바닥만 한 게 뭐 정리하기 어렵겠어.' 하지만 오산, 오산입니다! 아기옷은 크기가 작고, 접는 법이 어렵지 않아 정리 행위 자체의 난이도가 낮다. 반씩 착착 접어 칸칸이 쏙쏙 넣기만 해도 크게 모양새가 나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기 서랍장은 자주 개미지옥으로 변신하고, 온갖 잡동사니가 모인 공간이 되기 쉽다. 작디작은 아기 몸에 이리 꽂고, 씌우고, 덮고, 입힐 것들이 뭐 그리 많은지. 그러면서 왜 또 항상 부족한 느낌인지. 정리하자. 정신 바짝 차리고.
1. 아이 별로, 물건 별로 구분해서 정리한다. 아이가 한 명 이상일 경우, 아이 별로 물건을 최대한 분리해서 넣어둔다. 우리 집은 8살 터울이라 옷크기의 차이가 많이 나서 구분이 쉬운 이점이 있다. 연년생이라도, 비슷한 옷을 공유해서 입더라도 최대한 속옷과 양말부터 아이별로 구분해 두는 연습을 하자. 정리가 수월해지는 장점도 있고, 장차 아이가 컸을 때 자신의 공간을 스스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라도.
23개월 둘째는 외출하자는 이야기를 들으면 벌써 본인의 서랍장에 가서 옷을 꺼내달라고 난리다. 양말이 어디에 있는지, 내복은 몇 째칸에 넣는지 이미 아는 걸 보면 정리 습관은 우리 생각보다 더 일찍 만들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2. 5층에는 가장 자잘한 것들을 넣어둔다. 칸막이가 있는 바구니를 구매해서 서랍장에 두 개만 넣어주었다. 턱받이용, 양말용. 바구니를 사서 가운데에 넣어주면 양 쪽에는 저절로 공간이 분리되어 파티션이 따로 필요 없다. 바구니를 켜켜이 넣지 말고 한 두 개만 넣어두면 끝. 어차피 공간 분리가 목적이니까. tip. 바구니는 꼭 서랍의 깊이와 높이를 고려해서 구매할 것. 아까운 길이가 남을 수도, 서랍이 안 닫힐 수도 있다. 실은 내가 자주 했던 실수를 고백하는 것이다.
3. 엄마의 키를 고려하여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될 높이에 자주 손이 가는 물건을 배치한다. 나의 경우는 3,4층이다. 4층에는 아이 내복과 요즘 자주 입는 상하복이다. 첫째 때는 정말, 정말, 정말로 옷을 많이 샀다. 아이가 입으면 어머어머 너무 예쁘고, 안 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았다. 아기가 필요로 하는 적정량의 옷이 존재하고, 사실 아기는 뭘 입어도 예쁘다는 것을. 가운데 자리에 저렇게 여백이 있다니. 여백의 미는 바로 저런 것이다. 옷들아 숨을 쉬어라.
4. 3층으로 내려간다. 여기도 자주 이용하는 층이다. 4층에는 상하복을 보관한다면 3층에는 상의와 하의, 각종 조끼류를 보관한다. 자주 입지는 않지만 래시가드류(물놀이 때 필요할법한 옷)도 보관해 두었다.
5. 2층에는 여름옷 중에서 내년에 다시 입히게 될지 아닐지 확실치 않은 것을 정리해 두었다. 너무 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옷들이라 그중에 많은 부분을 지인의 아기에게 물려주거나 마땅찮을 때는 기부를 할 예정이다. 가장 예쁘고, 가장 새것 같은 옷을 골라 깨끗하게 세탁해서 사랑도 함께 담아 기부해야지.
6. 1층은 사실 거의 비어있다. 사실 1,2층은 아기의 손이 닿는 높이라 물건을 두기가 조심스럽기도 하고 몸을 숙여 꺼내야 하기에 여백의 공간으로 둔다. 고백하자면 괴력의 23개월 사나이가 문 열림 방지 장치를 당겨서 뜯어버렸다. 모든 물건이 바깥으로 나오는 광란의 사태가 두 어번 있었다.
7. 그럼 외투는 어디에 보관하느냐. 자문자답하자면 현관 근처 틈새 수납장에 걸어둔다. 집을 나서기 직전! 입혀 나가기 쉽도록 말이다. 땀이 많은 아기라 미리 외투를 입혀두는 일이 없기에 최대한 외출 나서기 직전에 외투를 입힌다. 무조건 동선이다. 아기의 동선, 엄마의 습관에 따라 정리하자.
워낙 물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편이다. 물건은 물건일 뿐, 과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아기옷정리. 시즌마다 필연적으로 이별해야 할 옷이 생산되는 아기 옷장. 몸보다 마음이 어려운 이 아기의 옷장을 정리하면서 마음속에 되뇐다.
'도동아, 너의 아기 냄새, 너의 배냇머리, 숨결, 콤콤한 우유 내음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할게. 물건이 아니라 엄마의 기억 속에. 그리고 마음 안에.'
한껏 감성에 젖어 서랍장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엄마 옷장에서 모자를 꺼내 쓰고 달아나는 우리 도동이. 이 귀여운 장난도 엄마 마음속에 영구 저장합니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