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버린 쓰레기, 알뜰살뜰 모아서.
설이 코앞이다. 아니, 코보다 더 앞이다. 아버님은 4형제 중 막내시라 차례를 우리가 지내지 않는다. 결혼하고 몇 해는 큰댁에 모여 수십 명이 함께 명절 치렀는데 이제는 각 집에서 명절을 난다. 양가 모두 우리 집 반경 20분 거리에 사시기 때문에 설 당일 아침 일찍 방문을 드리고 있다. 고로, 설 전날은 다소 여유가 있는 날, 다른 일을 하는 날이다. 그 다른 일이란 동글씨가 가장 싫어하는 그 일. "대. 청. 소" 그런데 언젠가부터 명절 전날 대청소를 하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어떤 방법이 효과적이었던 걸까.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속에 답이 있었다. 바로 '김'이다.
본론을 쓰기에 앞서, 퀴즈 하나 내고 시작합니다.
정리피플의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김은?
정답: 1위 가는 김, 2위는 하는 김, 3위는 일어난 김이다.
정리는 생활이요, 습관이라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신혼 초,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신랑의 '놓아두는 습관'이었다. 뭐든 있던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나인데 반해, 신랑은 쓴 자리에 그대로 놓아둔다. 신랑이 물건을 만지고 나면, 그 물건은 원위치가 아닌 최종 사용지를 추적해야 했다. 그래서 10년, 아니구나 이제 11년째구나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위의 1,2,3의 말이다.
"여보, 가는 김에 쓰레기통에 이거 버리는 거 어때?"
"여보, 세수하는 김에 세면대 물기 한 번 닦는 거 어때?"
"여보, 일어난 김에 벗어둔 옷 세탁함에 넣어두는 거 어때?"
그 뒤의 장면은 상상에 맡긴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내가 그 김 제일 싫어하는 거 알지?" 남편의 투덜거림이 들린다. 하지만 불평의 입과 무관하게 그의 손에는 본인이 벗은 옷, 버린 쓰레기가 들려져 있다. 움직이는 김에 정리를 하는 것이다. 매번 이렇게 정리를 종용할 수는 없고, 신랑이 손쉽게 행할 수 있는 정리의 요령을 알려주는 것도 방법이겠다. 결코 정리 피플, 미미멀리스트가 아닌 신랑의 정리를 도와줄 것들이 뭐가 있을까. '김'에만 의존하기엔 내 입과, 그의 귀가 고달프다. 아기자기한 살림살이에 대한 로망을 살짝 내려놓고, 나를 도와줄 살림이 필요했다.
1. 신랑 양말과 속옷은 최대한 통일감 있게 구매한다.
총천연색의 속옷과 양말은 무에 쓰나요? 댄디하고 심플하게 살기로 하자 우리. 동그리가 좋아하는 C브랜드의 팬티가 통풍이 과해진다 싶을 때 리필해 주는 식으로 꾀를 부리며 사는 중이다. 그래야 빨래 갤 때 이게 누구와 짝이었더라. 뒤적뒤적할 일도 시간도 줄어들 테니 말이다. (속옷 사진은 남편 보호차원에서 생략한다.) 무튼, 빨래는 언제 개나요? '앉은 김에'
2. 하얀 이불의 내무반
제군들, 아침 기상 시간입니다. 각자의 이부자리 정리 실시! 착착착. 우리 집에는 여분의 이불이 별로 없다. 대한민국은 이제 1일 생활권인 데다 양가 식구 모두 같은 지역에 살기 때문에 손님이 집에 와서 자는 일은 10년 간 한 번? 두 번? 있을까 말까였다. 그리고 이불은 딱 2종류다. 여름 이불과 사계절 이불. 겨울이라도 아파트라 따뜻하고, 구스를 사 봤으나 아이들은 걷어차기 바빴다. 게다가 기상 시간이 제각각인 터라 이불이 크면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몸만 쏙 나가버리는 요망함이 몸에 밴단 말이다.
결혼 7년 차쯤이었나? 모든 사계절 이불을 같은 색상의 싱글 사이즈로 바꿨다. 그렇다. 우리 집은 내무반으로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인의 이불이 명확해지니, 아이부터 어른까지 본인이 덮고 자는 이불은 꼭 스스로 펴고 갠다. 언제? ‘눈 뜬 김에’
3. 주기적으로 신랑 옷장을 대정리 한다. 꼬불쳐둔 옷(내지는 돈?)은 없는지.
아, 이곳은 정말 개미소굴보다도 더 뒤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작년에 산 옷이 아직도 까꿍하게 새것인데 신랑은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이니, 그럴 때는 현실을 직시하게끔 해야 한다. 남길 옷만 걸고 다 버리자고 제안해야 한다. 옷 무덤을 한 차례 만든 다음에, 둘이서 합심하여 옷을 정리한다. 꼭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옷의 주인이 옷의 위치를 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보! 내 티셔츠 그거 어디 있지?"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고, 정리의 힘듦을 느낀 신랑이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자 노력한다. 신랑 옷 정리는 언제? '옷장 문 연 김에'
4. 자잘한 물건을 놓아두는 공간을 마련한다. (차키, 지갑, 이어폰 등)
신랑의 주요 특징 중 하나. 물건을 쓴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이다. 결혼 전에 몸에 밴 습성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몬테소리 교육하듯이, "자, 이 물건을 여기에 놓아보세요."라고 다소곳이 말해야 한다. 외출할 때면 늘 가지고 나가는 '지갑, 차키, 이어폰' 3종 세트는 신랑이 나가기 직전에 옷 매무새를 다지는 곳에 놓아둔다. 다이소의 바구니는 오늘도 열 일 중이다. 물건은 바구니에 언제 둔다? ' 옷 벗는 김에'
5. 담당구역을 명확히 정한다.
남편은 주중에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집안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그 문제에 나 역시 별 불만은 없다. 나름 최선을 다해주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 쓰레기를 내놓으면 버려주는 것. 사실 쓰레기 버리기 정도만 군말없이 담당해 줘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다른 곳은 다 치워도 신랑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으니, 화장실 변기다. 우리 집 화장실은 남성용, 여성용으로 구분 지어 사용한다. 굳이 나눴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리 됐다. 거실의 화장실은 남성 3인이 사용하고, 안방 화장실은 내가 쓴다. 내무반에 사는 여군으로서 이 정도 특혜는 누려야지. 화장실 바닥도, 욕조도 씻겠으나 거실 화장실 변기만은 신랑 담당이다. 변기는 너의 것, 너의 일. 변기만 깨끗해도 화장실이 훤하지 않나. 청소할 일이 반으로 줄어든다. 변기 청소는 언제? '화장실 간 김에'
이쯤 되면 동글씨가 득달같이 달려와 "여기서도 김타령이뇨?" 항의가 있을 것도 같지만 어쩌리. 이 방법만이 대청소의 횟수를 줄이는 길인 것을. 다들 '김' 하나씩 집에 들이고 미미한 정리를 습관화해 보자.
며칠 전 봤던 드라마에서 가슴을 뻥 뚫어주는 대사를 접했다. 무릎을 탁! 치고, 메모했다. 정리의 포인트가 되겠어. 대사는 이랬다.
"축하해. 내가 버린 쓰레기, 알뜰살뜰 주운 거" (바람난 전 남자 친구의 결혼식에 가서 훅을 날리는 장면)
정리피플이 아니며, 되고 싶어 하지도 않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마워, 네가 버린 쓰레기, 알뜰살뜰 모아서 '김'과 함께 정리해 줘."
엔딩 크레딧 올라가고!! 글을 맺음 합니다.
(이번 글은, 동글씨의 댓글을 정중히 사양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