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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Feb 22. 2024

미미한 정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정리의 상관관계

 연재의 최종화를 맞아, 더 나누고픈 정리요령 대신 정리에 대한 미미멀리스트의 생각을 끄적이기로 한다. 정리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있었다.

  정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가 뭘까.
깔끔함, 상쾌함?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사진: pixabay)

 <깨진 유리창의 법칙> 은 이 질문에 답을 준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에 만든 개념이다. 길거리에 똑같은 상태의 차량 두 대를 세우고 본잇을 열어둔다. 한 대는 본잇만 열어둔 채로, 또 다른 한 대는 본잇을 열어둔 것에 더해 유리창을 조금 깨뜨린다. 그 상태로 일주일을 길에 방치했을 때 두 대의 상태는 어땠을까. 본잇만 열어둔 차량은 원상태 그대로 세워져 있는 반면, 유리창이 깨진 차량은 배터리, 소모품 등이 도난당하고, 차체마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두 차량의 너무도 다른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깨진 유리창을 보고 지나쳤던 행인은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에도 수리되지 않고 방치된 유리창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 차는 주인이 애착을 가진 물건이 아니구나. 내가 돌을 던져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겠구나.'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도덕적 기준이 무너진다는 것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 이다.

 

 우리가 식당의 화장실에 방문했다고 하자. 새 건물이든, 낡은 건물이든 그건 중요치 않다. 식당의 화장실이 깨끗하고, 손 비누가 준비되어 있고, 거울에는 윤이 난다면? 우리는 그 식당의 위생상태를 크게 의심치 않고 맛있게 식사를 하겠지. 반대로 쓰레기가 넘쳐나고, 세면대는 엉망에, 바닥은 뭔지 모를 것으로 미끌거린다면? 식사의 위생마저 미심쩍을지 모른다.  


 작은 행동이 주는 큰 변화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살림도 마찬가지다. 10년째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여기저기 손 볼 곳이 생기고 삐그덕 대기 시작한다. 조금만 방심했다 하면 팬트리가 그야말로 창고가 되어 버리고 만다. '어유, 이 짐 싹 다 버리고 새 집에 이사 가서 다시 싹 시작해야지.'라는 말이 앞니까지 올라온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는 더 열심히 애정을 보이고 정돈하고 청소한다.(그게 비록 '척'일지라도 말이다.) 부모가 애정을 갖지 않는 집에 아이들이 행복을 느낄 리가 없다. '내 책상을 좀 정리해야지.' 생각이 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 집은 묵은 살림이라 어쩔 수 없어.' '청소하면 너무 피곤해.'라고 생각하는 순간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처럼 살림도 방치되기 십상이다. 어제보다 나은 컨디션이면 됐지 우리가 뭘 얼마나 큰걸 바라랴.  


 어질러진 식탁, 뒤죽박죽 옷장, 문만 열면 쏟아지는 팬트리의 휴지, 먹어도 되는지 의심스러운 냉동실의 화석들. 이런 공간에서 진짜 휴식을 취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지나치게 깔끔을 떨며 살자는 건 아니다. 적어도 물건의 제자리가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고, 소중한 아이들에게도 보여주며 살고 싶다.


  '어설픈' 정리피플이라고 칭했듯이 나는 완벽한 미니멀리스트도, 멋드러지게 정리할 줄 아는 완벽형 정리자도 아니다. 어지르고 치우고의 반복이지만 어설픈 재주로 매일 고군분투하는 정리 노력자쯤 되겠다. 사실, 오늘의 이 글 또한 타인을 향한 말이 아닌, 나 자신에게 이르는 자기 암시에 가까운 메시지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정 들이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관계도 그렇듯 물건에게도 틈틈이 관심을 주고, 닦고, 비워내는 것이 정을 들이는 과정이라 믿는다. 내 살림이 화려하지 않아도, 고급스럽지 않아도 좋다. 비싼 물건이 아니어도 좋다. 내게 꼭 필요한 물건들로 채워진 공간에서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자. 비록 우리의 살림이 미니멀해지지는 않는다 해도, 어제보다 정돈된 모습이기를 바란다.

미미멀리스트 10주간의 여정
가장 사랑받았던 냉장고 정리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은 연재라 맺음이 아쉽지만, 또 우리의 정리는 계속되리라 믿는다. 제 머리 못 깎는 중이, 머리 좀 깔끔하게 깎으라 잔소리 하는 글을 내뱉어 한없이 부끄럽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뻔뻔하게 2부가 있지 않을까. 살짝 냄새만 풍기며 연재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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