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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Jan 30. 2024

떡볶이를 먹으려면 용기가 필요해요.

저, 용기 내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00 떡볶이입니다. 잠시 뒤 통화가 연결됩니다. 연결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

버튼을 누르니 가슴이 콩닥 댄다. 전화 주문도 오랜만이거니와, 오늘은 여느 날과 다르기 때문이다.


"네, 00 떡볶이입니다."

"안녕하세요. 로제 떡볶이 1인분, 치즈 떡볶이 1인분, 튀김 1인분 포장하려구요."

"네, 10분 뒤에 오시면 됩니다"

"저... 그런데요. 저, 용기를 좀 드려도 될까요?"


 일의 시작은 이러하다. 도담이는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오지만, 집에 들어오면 첫마디가 항상 "엄마, 배가 너무 고파요!" 다. 그래서 학원 수업 전 간식을 먹는다. 오늘은 하교 후에 떡볶이를 먹기로 했고 말이다. 미리 사 두면 좋아하겠지. 후후. 미소가 나온다. 떡볶이 만원 어치를 배달시키려고 어플을 켜니 배달료가 4천 원! 배달료 물가도 장난이 없구나. 장 보러 나간 김에 포장해 와야겠다.


 한 가지 걱정이 앞선다. 배달이나 포장 음식을 먹고 나면 엄청나게 쌓이는 포장용기 말이다. 살림 내공이 월등하신 분들은 이리저리 활용을 하시겠지만, 나의 경우는 플라스틱 용기를 잘 씻어 말려둬도 결국 분리수거함으로 들어가는 루틴이었다. 오늘도 쓰레기를 만드는 건가.


'쓰레기 죄책감'


 사실, 쓰레기 죄책감의 진짜 시작은 어제다.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시간. 집에 가서 밥을 하자니 늦을 것 같고, 먹고 들어가자니 둘째가 잠이 들었다.

"엄마, 00에서 파는 비빔밥 포장해 가요!"

비빔밥 2인분 포장

 첫째의 사랑스러운 제안이다. "엄마가 해준 찌개가 먹고 싶어요." 했으면 어쩔 뻔했나. 눈치있는 녀석. 피곤한 심신에 단비 같은 아이디어였다. 집 앞 가게에서 포장을 해 와 식탁에서 뜯는 순간 깜짝 놀랐다. 하나, 둘, 셋, 넷. 비빔밥 두 개를 포장했는데 자잘한 통이 몇 개 인지 모르겠다. 이 통을 다 씻어 말려서 어디다 또 쓸꼬. 그냥 버려? 일단 놔둬? 밥을 먹는 내내 통을 여러 번 바라보게 됐다.


 오늘도 떡볶이를 포장해 먹어야 한다면, 또 적잖은 용기가 나오겠지.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 한 번도 해 본 적 없지만, 해보고 싶었던 그걸 오늘 해 보자.' 평소 같았으면 어플로 주문을 했겠지만,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 발목을 잡는 게 있었으니 전문용어로 "뻘쭘함"이다. 유난스러워 보이진 않을까. 이렇게 하는 게 되려 음식점 사장님을 번거롭게 하는 일은 아닐까. 사장님이 싫어하시지 않을까. 이번에도 걱정이 죄책감을 눌러버리려 한다. 에라 모르겠다. 이번에는 꼭! 도전에 성공해 보리라. 뭐든 생각이 나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 아니겠는가. 무안 주면, 한 번 뻘쭘하고 말지 뭐. 걱정을 이긴 용기가 고개를 든다.

오늘의 외출메이트. 장바구니 보냉백과 포장용기백

전화기 너머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런데요. 사장님. 제 밀폐용기를 가져가서 떡볶이를 받아가도 될까요?"

"그럼요! 10분쯤 뒤에 오세요!"

나의 걱정이 무색하리만치 밝은 사장님의 목소리였다.


 살짝 민망했지만, 부러 더 씩씩한 척하며 가게로 들어갔다. 넉넉한 사이즈의 통을 세 개 드렸더니 사장님이 차례차례 담아주신다.

"제가 이렇게 포장해서 되려 불편드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농담에 실어 마음을 전했다.

"아니요, 전혀요. 제가 치즈 한 줌 더 넣었습니다!" 하고 찡긋 웃으신다.

이 안에 너(의 떡볶이) 있다.

 처음으로 용기를 냈던 이 경험이 민망함으로 끝났다면, 다음은 없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장님의 치즈 한 줌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 사장님은 단골을 얻었고, 환경을 아꼈다. 결정적으로 집에 돌아와 음식을 먹으니 따끈함 그 자체. 설거지를 하니 쓰레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이 매직. 용기 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약간의 불편함과 민망함을 감수하니, 쓰레기통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극강의 따끈함으로 마음도 따끈해졌다.


가끔은 저... 용기 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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