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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Feb 06. 2024

가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신을 하고, 뛰어볼까 폴짝!

 주말의 이른 시간. 새벽이라 해야 하나, 아침이라 해야 하나. 무튼 공육시. 동네 사우나가 문을 여는 시간이다. 누구도 몸 담지 않은 청정한 물에 들어갈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내가 1등이겠지. 붉게 올라오는 해를 뒤로하고 사우나 문을 연다. 아니, 이럴 수가. 사우나의 지박령인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벌써 와글와글이다. 부지런한 사람들, 사우나에 진심인 사람들, 아침잠을 상실한 새벽 사우나반이 열렸다. 우리 엄마 또래의 분들이 대다수인 시간에 내가 서둘러 와 끼인 게 기특해 보였는지 사장님이 박카스를 건네신다. 아직 동네 인심 살아 있구나. 힘을 내서 세신 해보자. 선수 입장이다. 이제 '때'를 보내줘야 할 때가 왔다.


 주마다는 아니어도 달에 한 번은 세신을 가는 편이다. 각질을 벗겨내는 행위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피부에 좋지 않다는 기사도 읽었지만, 세신 뒤에 찾아오는 그 달콤하고 개운한 느낌적인 감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너무 피곤한 날, 몸이 찌뿌둥한 날 사우나를 가는데 요즘은 이게 참 난감해졌단 말이다. 예전에는 두 어 번 왕복하면 팔 한쪽을 다 밀었던 것 같은데 면적의 증가, 신체적 노화가 쌍방으로 작용하여 세신을 하는 게 즐겁지 않게 되었다. 세신의 즐거움에 큰 위기가 온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는 숨기고픈 일이 서너 번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사우나 실신 사건. 물 안에 너무 오래 있어 그랬는지, 나의 때를 감당하지 못했는지 사우나에서 두 번 실신한 악몽이 있다. 목욕탕 아주머니 두어 분이 실어 나르셨던 민폐의 역사. 다시는 그럴 수 없다.

사진:pixabay

 내 몸이 감당되지 않을 만큼 피로감이 들 때는 세신을 받자. 이 지친 몸으로 때를 밀다 예전의 불상사가 재발하면 안 된다. 그때는 세 분이었지만 지금은 네 분이 달려들어도 힘들지 몰라. 그냥 때를 밀어달라 하는 편이 모두에게 행복하겠다. 등만 밀면 만 원, 전체 다 밀면 2만 5천 원이란다. 물가, 물가, 고물가. 고민의 시간이 온다. ‘등만 밀어? 전체를 다 받아?’ 열심히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만큼의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

 에잇. 외식값이랑 커피값 좀 아끼고 한 달에 한 번 나를 위해 2만 5천 원쯤 쾌척하자.


 세신비를 선불로 이모님께 드리면,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몸의 때를 불려야 한다. 고분고분, 총총 걸어 온탕과 사우나실에서 각질들과 이별할 준비를 시작한다. 때야 때야, 이제 그만 이별하자. 너희는 이제 가야 할 '때'가 되었노라.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어디선가 에코 가득한 메아리가 울려온다.  

“언니야아~ 오세요오오오오오오오오.”

 ‘지금 저 언니가 난가? 못 봐도 우리 이모뻘이신데? 아닐 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모님과 눈이 적극적으로 마주치고 만다. 때타월을 낀 한쪽 손을 들어 눈빛으로 나를 부른다.  '그래, 바로 너!' 하는 눈빛. ‘아, 그 언니가 나였구나.’

 경쾌하게 총총 걸어가 세신대로 올라가 누우면 지금부터는 목욕관리사 이모님의 지휘에 따라야 한다. 때타월로 박수를 착착! 하며 "똑바로"라 하시면 정자세로.  또 착착! 두드리면 옆으로. 그렇게 전면 후면 옆면까지의 때를 미는 순서다. 내 각질의 결정권을 오롯이 목욕관리사 이모님께 양도하는 순간이다. 눈은 감아야 한다. ‘때가 많이 나오나요?’와 같은 초급적인 질문은 하지 않고 지휘에 맞춰 통돌이 삼겹살처럼 몸을 이리저리 돌릴 뿐이다. 정말 신기하단 말이다. 나는 어디가 가려워요. 어디를 더 밀어주시면 좋겠어요. 말한 바가 없는데 시원하단 말이지. 특별히 더 거친 타월을 사용하는 것이 아님에도 아프지 않게 가려운 곳을 찾아내 밀어주는 느낌이다. 


 만세를 한 자세로 눈을 감고 이리 데굴, 저리 데굴하다보니 불현듯 떠오른 생각. 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굳이 글이 아니어도 나와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 상대가 이런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면.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가려운 곳을 알아봐 주고, 긁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거친 말로 상처 내지 않아도 부드럽게, 매끄럽게 쓰고, 말해야지. 마음에 변화를 주는 사람.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되고 싶다. 세신을 이모님께 맡기듯, 생각도 의식에 맡겨 그대로 흘러간다.  

사진:unsplash

 세신을 받으려고 누워 있는 내가 독자라 했을 때, 때를 밀어주는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이겠다. 글을 쓰는 사람의 지휘대로 이리저리 읽어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개운해졌다면. 작가로서 그것보다 좋은 게 있을까. 이리저리 계산기를 굴리고 망설이다가도 나의 책을, 내 글을 읽는 데에 돈을 쓰며 "자신을 위한 쾌척"이라 생각하게 된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 일단, 소처럼 우직하게 그날로 향해보자.  


때 밀다 별별 잡념에 빠졌던 그날, 세신대에 누워 행복한 상상을 잠시 했다. 이모님의 세찬 물바가지에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떴지만 말이다.



세신을 해서 가야할 '때'와 작별했으니,
와야할 그 때를 위해 노트북을 켜 봐야지.

어느 특별하지 않은 날이
조금 특별한 ‘때’가 되었다.

(대문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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