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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나 Jan 16. 2024

이무기 전성시대

 요즘 나의 고막 남친이 있으니, 싱어게인 49호 소수빈 님 되시겠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그의 달달한 목소리로 수미쌍관하고 있다. H.O.T에도 크게 열광한 적 없는 내가 덕질 아닌 덕질을 한다. 아니, 성대에 꿀을 바른 거야 뭐야. 멜론 플레이리스트에 그의 곡을 소복이 담았다. 49호는 실감하고 있을까. 이런 현실을.

49호, 드디어 용됐다!

jtbc, 싱어게인 tv 화면 촬영본

 최근 10~15년은 경연 프로그램 홍수였다. 아, 10년이 아니구나. 사실 경연 프로그램의 시초는 전국 노래자랑 아니겠는가. 일상과 생계에 가려졌던 끼와 노래를 한껏 뽐내던 시민들의 역사가 지금도 쪼롬히 이어지고 있다.  그 뒤로 끝없이 이어진 오디션 프로그램은 셀 수가 없다. 슈퍼스타K, K-POP STAR, 슈퍼밴드 등등 다 말할 여력이 없을 정도다.


 싱어게인 3을 보며 생각한다. ‘또 있어? 이렇게 또 있다고? 그 많은 프로그램을 거치고도 이렇게 실력자가 또 있다고?’ 캐도 캐도 나오는 금광처럼 재야의 고수가 넘쳐난다. 무명의 가수들. 참가자 모두 면면이 대단하다. 풋풋한 목소리부터 한이 서린 가락까지. 사연과 스타일도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넋을 놓고 감탄 하다 보면 물음표 하나가 뜬다. ‘저 목소리를, 자기 이름으로 이렇게 들려주고 싶어 어찌 참고 살았을까? ’사실 그들은 반짝 나타난 고수들이 아니다. 그 무대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땀의 시간이 있었으리라. 애매한 재능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지턱을 수도 없이 넘으며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건 노래하는 이무기. 우리는 용이 되고 싶어 천 년을 수련하던 이무기의 모습을 보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경연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무기들이 빛을 발하는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 아닐까. 가수가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이무기가 존재한다. 당장 나부터 말이다. 우리는 모두 어디 즈음의 이무기다.



 그들이 노래하는 이무기라면 나는 글 쓰는 이무기.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곳. 브런치스토리에도 셀 수 없는 이무기가 똬리를 틀고 승천하기를 갈망한다. 글을 사랑하고, 쓰고 싶어 모인 곳. 잘 쓰고 싶은 마음, 내 글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집단이다. 작가의 글을, 작가 지망생의 글을 살뜰히 곱씹어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악플도 댓글이라 그마저도 소중하다는 작가들의 간절한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무기들은 용이 되려고 1000년을 수행하는데, 여의주가 너무 많아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는 하나의 여의주만 남기고 나머지를 버릴 때 용이 되기도 한단다. 사악한 인간을 백 명쯤 먹으면 용이 된다는 전설도 있다. 결국 갖가지 노력을 하다 어떻게 용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재미있는 건, 이무기가 1000년을 수행한 후 밖으로 나와서 기다리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사람이 "용이다" 하면 용이 되고, "뱀이다"라고 하면 이무기가 된다는 거다. 그러면 다시 천 년을 수련해야 한단다.


 이무기도 우리네 삶처럼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않구나. 심사위원이 "너는 뱀이야" 하면 다시 무명의 가수로, "너는 용이야" 하면 스타로 부상하는 것. 노래하는 이무기의 희로애락을 바라보는 ‘글쟁이 이무기’는 심하게 감정이입을 하고 만다. 면접을 보는 취업 준비생도, 승진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도, 수험생도 공감할 이무기의 간절함이다.


 이무기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해야겠지. 수련이 1000년이라 했던가. 타고난 여의주를 여럿 가졌대도 결국은 용이 될 여의주만 잘 골라 다듬어야 용이 된다 했던가. 천년은 아니어도 일단 이무기의 마음으로 다시 키보드에 열 손가락을 얹는다. 언제부터 누가 기다려줬다고 글을 썼던가. 내가 쓰면 그저 쓰는 거지.


 용의 해가 열렸다.

 부디 수많은 이무기들이 여의주를 물고 용이 되어 노래하는 해가 되기를.  

 그 용의 대열 어딘가에 나도 함께이기를.


유치하지만 한 번만 외치고 간다.

남녀노소 이무기들 만만세!!


(대문사진: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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