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나 Jan 09. 2024

아랫집 청년의 노랫소리

아랫집 청년, 안녕하세요. 윗집 애기 엄마예요. 

8년이 좀 넘은 것 같아요. 청년의 노랫소리를 들어온 것이요.


2015년의 여름날,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였나요. 도담이는 돌이 되지 않은 아기라 하루에 낮잠을 두어 번씩 잤답니다. 잠들지 못하는 아기의 칭얼거림보다 더 크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지요. 나는 분명 티비도 라디오도 튼 적이 없는데 어디선가 날아와 귓전을 때리는 노랫소리가 있었어요. 문제의 장소는 거실 화장실이었어요. 환풍구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아랫집에 대학생 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싱어피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좀 무서웠어요. 화장실 에코에 실려오는 남성의 고음. 그리고 너무 매일 매번 똑같은 가수의 노래만 불러서요. 그 가수 노래를 애정하는구나 생각하다가 ‘혹시 어디 경연을 준비하나?’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미안하게도 그런 실력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노래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는데? 팬클럽인가? 싶다가. 어제 이별했나? 싶다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저렇게 목을 혹사하며 부르다간 성대가 일이 나도 나겠다 싶었어요. 나의 귀보다는 청년의 목이 걱정됐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각자의 집에 감금 아닌 감금이 되었던 2020년. 청년은 많이 답답한 듯했어요. 이따금 밤 12시에도 들려오는 청년의 노랫소리에, 가끔은 화장실 배수구멍에 대고 속삭인 적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아이고 시끄러워라."그 소리. 귀신소리 아니고 저였습니다. 그런데 말이 끝나자마자 노래가 갑자기 멈춰서 흠칫 놀라 화장실 문을 닫고 방으로 달려갔던 사람 접니다.  가끔은 청년의 아버지로 추정되시는 분께서 "야야야야!!!!!!"소리를 치셨고, 그날은 고요한 밤을 보낼 수 있었어요. 감사했습니다.

 

pixabay

 몇 해가 지났어요. 대학생이라고 들었던 청년은 시험 준비를 하는지 낮에도 노래를 부르셨어요. 네. 한창 힘이 들 때였지요. 점심 식후 한곡이 얼마나 달콤할까. 싶었습니다. 청년은 여전히 그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더군요.


 그렇게 5년쯤 지났을 때인가요? 신랑이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저를 다급하게 부르는 거예요. 또 휴지 배달인가. 한숨을 쉬며 다가가니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 동글씨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야~ 아랫집 청년! 노래가 정말 많이 늘었어!!! 요즘 좀 뜸했는데! “ 덕분에 우리 부부는 10초쯤 청년의 노래를 감상하고 한번 하하 웃었답니다.


 사실, 시끄러울 때도 있었지요. 인터폰을 누를 수도 있겠지요. 나에게는 멜로디인 것이 남에게는 소음일 테니까요. 하지만 우린 그럴 수가 없어요. 늘 고마운 마음을 한편에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성격이라 해도 남자아이인 도담이가 걸음마를 떼기 전에 이 집에 이사를 왔어요. 그 아이가 11살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뛰고, 어쩌다 장난감도 떨어뜨려가며 놀았으니 어찌 매일이 조용했을까요. 제 유별난 성격에 새벽까지 사부작대며 설거지를 한 적도 여러 번 있으니 그 또한 어쩌면 불편을 줬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9년 동안 아랫집 분들은 단 한 번을, 인터폰을 하신 적이 없어요. 그 감사함을 저희가 어찌 모를까요.


 늦둥이로 태어난 둘째 도동이는 첫째와 기본재질이 좀 다른 친구라 ‘조용히, 얌전히’가 잘 되지 않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뛰지 마라, 던지면 안 된다. 바퀴 굴리지 마라. 3종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데도 어려울 때가 많아요. 두 살 배기 아기가 제 훈육을 들을 리 없지요. 혼자 마음을 졸인 적도 많아요.


 어느 날은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아주머님(청년의 어머니)을 마주쳤어요. 죄송스러운 마음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고르고 있었답니다. 아주머니는 그런 제 마음을 눈치라도 채신 듯 “아이고 귀여워라. 우리가 볼 땐 마냥 이뻐도 이맘때가 엄마 제일 힘들 때지! ” 하시며 햇살처럼 웃어주시더라고요.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고 뭉클했답니다.


 그러니 어찌 청년의 노랫가락에 불편한 마음이 생기겠어요. 이번 구정 설에는 고기라고 사다 드릴까 생각을 하다가, 그게 되려 받는 입장에선 부담일 수 있겠다 싶어 또 마음으로만 감사함을 표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오랜만에 노래가 들리네요. 하루의 스트레스를 노래 한 소절에 날려버리고, 기분 좋은 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험도 치는 족족 합격하길 빕니다. 얘기를 해주고 싶은데, 해 줄 방법이 없어 혼자 적고, 그저 남들과 나눕니다.


근데, 실력 정말 많이 늘었어요. 고음 쭉쭉. 바이브레이션도 자연스럽고. 역시 뭐든 연습의 힘은 무섭습니다.

아랫집 청년이 부릅니다. 임창정의 ‘내가 저지른 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