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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Oct 23. 2022

뉴욕의 비보이들, 호의를 농락하다

잘 못 된 여행 10

댄스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댄싱 9],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쇼다운],  [플라이 투 더 댄스]를 열혈 시청했다.

뮤지컬 [시카고]를 보고 타임 스퀘어를 지나서 숙소로 돌아가는데 비보이들이 거리 공연을 시작했다.

비보잉 직관이라니!

배가 고프지만 무조건 보고 가야지.


비보이들이 한 명씩 춤을 추고 나면 관객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는데, 사회자가 박수 소리가 작으니 더 쳐달라고 관객들에게 요구했다.

업 돼서 목청이 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관객들이 더 많이 모여들자, 비보이들은 플라스틱 콘으로 관객들이 무대에 점점 다가설 수 있도록 유도했다.

비보이 한 명이 관객들 중 한 어린이를 무대로 데리고 나갔다. 그 아이를 넘는 퍼포먼스가 이어졌고, 묘기에 가까운 춤 동작과 코믹한 무대 매너로 관객들의 열기는 한층 뜨거워져 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관객들 중에 키가 큰, 최소 190 이상은 되어 보이는 남성 관객들을 아이 뒤에 일렬로 세웠다.

'어머 저 사람들을 넘는다고?'

이미 묘기를 본 관객들의 기대감은 높아졌고 흥이 마구 올라왔다.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자진해서 아이 뒤에 줄을 서는 남성도 있었으니까.


관객들의 호응에 한 비보이가 20달러씩 달라며 팁 박스를 돌렸다. 소심한 데다 짠순이지만 너무 즐거워서 5달러를 쾌척했다. 아이 뒤에 서 있는 참가자들의 일행은 비보이가 언급한 20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퍼포먼스는 지연되고 마이크를 잡은 비보이의 연설이 길어지자 들뜬 분위기가 점점 죽어갔다.


결국 그 비보이는 즐겁게 퍼포먼스를 기다리고 있는 남성들에게 20달러를 갈취하기 시작했다. 위험하니 20달러를 주면 줄에서 빼 주고, 20달러를 안 주면 줄에 남겨서 비보이가 그 사람들을 넘는 걸로 퍼포먼스를 마무리했다. 큰 키 그대로의 사람을 넘는 건 아니었고 말뚝박기 놀이처럼 허리를 구부리게 한 뒤 넘었다. 20달러를 내놓지 않는 사람은 2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목청이 터져라 환호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식어 버렸다.

기쁜 마음으로 줄에 있던 한 남성도 기분이 상해서 '옜다, 먹고 떨어져라'하며 20달러를 주고 굳은 표정으로 가버렸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자진해서 무대로 나갔던 남성도 썩은 표정으로 일행에게 돌아갔다.

팁을 걷는 것까지는 좋다. 적어도 기쁜 마음으로 퍼포먼스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갈취하지는 말았어야지.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장난치면 안 되지. 두고두고 기분이 더러웠다.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박풀고갱이, 내가 너무 호응을 잘해줘서 관객들이 더 모인 거 같다고 했다. 입맛이 더 썼다.


뉴욕 여행 중에 타임 스퀘어를 지날 일이 많은데 그 후에도 저 비보이들이 같은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보였다. 퍼포먼스를 계속할 거면 제발 관광객의 호의를 농락하지 말았으면... 좋은 기분으로 여행을 마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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