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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Oct 22. 2022

외국인과 싸울 땐 영어보다 기세

잘 못 된 여행 08

박풀고갱이 특히 못 참는 것이 세 가지 있다.

하나가 새치기인데, 나머지 두 개도 새치기다.


월 스트리트의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를 찾아갔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황소와의 단독샷을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줄 서는 건 정말 싫지만, 줄을 서지 않으면 관광도 없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에 끝이 보일 때쯤 한 여성이 새치기를 했다.

이제 다음다음 다음이 내 차례인데 당연히 항의를 했지.

"줄 서세요."

"저기 저 언니가 아까부터 줄을 서고 있었어. 못 봤어?"

헐~ 뻔뻔하다.

"못 봤는데요."

뻔뻔함은 멈추지 않았다. 내 앞에 선 젊은 여성들 무리에게 묻더라. "너네 저 언니가 줄 서 있는 거 봤지?"

"아니오."

"아까 저 언니가 줄 서 있었잖아."

계속 우길 모양이다.


이 정도면 박풀고갱이 나설 때다.

박풀고갱이 큰 소리로 내게 물었다.

"뭐라는 거얏!?"

"우리 앞에 줄 서 있었대."


박풀고갱은 화려한 손동작을 곁들이며 그 관광객에게 외쳤다.(무려 영어로)


"노! 노! 빽! 빽!"


그제야 그 사람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사라졌다.

역시 싸울 땐 외국어 능력보다 기세다.


추신. 월스트리트의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는 이탈리아계 미국 작가인 아르투로 디 모디카의 작품이다. 1987년 주식 대폭락 이후, 호황을 기원하는 의미로 1989년 크리스마스 때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이 작품을 설치했는데, 주식시장에 상승세가 계속되면 '황소 시장(Bull Market)'이라고 하는데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뉴욕시는 불법 설치라고 처음에 이것을 치워 버렸으나,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많아서 당초 설치된 증권거래소에서 두 블록 남쪽에 다시 설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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