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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Jun 27. 2017

다시 백수, 떠나볼까?

주머니를 비우고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최는 지난주 목요일 사표를 냈다. 바로 다음날 짐 싸서 나왔다. 초고속 진행이다.

10여 년 동안 계약직을 전전했던 최. 그동안 한 번도 사표를 낸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몇 달만 참으면 저절로 그만둬지는데 사표를 던진다는 건 과용이다.

게다가 계약기간이 끝나면 달콤한 구직급여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쩌다가 과용을 부리게 되었다.

이번 직장이 이전 직장보다 특별히 더 힘들었거나 상사가 미친개 중에 미친개였던 것도 아니다.

사표를 낼 이유는 수만수천 가지였지만, 정작 사표를 던지게 만든 것은 작은 사건 하나였다. 


많은 직장인들이 1818 하면서 직장을 다닌다. 사표를 던지고 싶어도 생계 문제 때문에 던지지 못한다.

최는 복 받았다. 최소한의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으니까.

'衣(의)'야 어차피 별로 신경 쓰고 살지 않았고,

'食(식)'과 '住(주)'는 이럴 줄 미리 알고, 지난해 박의 어머니 집에 들어온 게 아닐까 싶다.

'酒(주)'가 문제라면 문제인데... 다행히도 술꾼들은 언제나 인심이 후하다. 


주머니는 자연스럽게 비워졌고, (쉽진 않겠지만) 이제 머리와 마음을 비우자.

그리고 다시 떠나보자. 

(뱃살만 살찌우지 말고) 영혼을 살찌울 것들 속으로 떠나보자.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제쳐두었던 어학 공부도 하자. 요가도 다시 시작하자.

그전에 우선 여행을 다녀오자.

직장을 잃고 얹혀사는 주제에 뭔 여행인가...

(어쩔 수 없는) 이런 여행이다.


최가 직장을 관두지 않았더라면 지금 대만 출장 중이다.

주최 측이 항공과 숙박을 제공하는 행사고, 개인이 항공권을 끊고 영수증과 보딩패스를 제출하면 환불받는 조건.

최조차도 설마 출장 한 주 전에 그만 둘 줄 몰랐기에, 항공권은 한 달도 훨씬 전에 구입해 둔 상태였다. 그리고 출장이 끝나가는 즈음에 박이 대만으로 와서 주말을 함께 보낼 계획이었기에 박의 항공권도 예매를 해둔 상태. 

항공권 두 개를 취소하는 것보다 최의 항공권을 변경하는 게 수수료적 측면에서 절약.이라서 일단 저지르기로 했다. 

그래서 내일 대만 까오슝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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