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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Apr 11. 2020

사랑꾼들은 이기적이다

도쿄에서 조카들과 보낸 시간들

나고야에서 도쿄로 가는 신칸센 열차에서 후지산이 보였다.

기차에서 본 후지산

신칸센은 요금이 비쌌지만 쾌적했고, 흡연칸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한국은 흡연자에 대한 혐오나 배제가 강한 편인데 일본은 안 그런 모양이다. 패스트 푸드점, 패밀리 레스토랑, 카페에 꼭 흡연석이 있고 술집은 전체가 다 흡연석이다. 최와 박은 술을 좋아하니까 이자카야를 자주 가는데 환기가 잘 되는 걸까? 찌든 담배 냄새는 없었다. 술집이 대체로 1층에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잡화점에 가보면 예쁜 휴대용 재떨이를 꽤 찾아볼 수 있는데, 길거리에 담배꽁초가 별로 없는 이유인가 싶다.

신칸센의 흡연실

맥주와 함께 에키벤(駅弁: 일본의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다 까먹고 한 숨 자고 나니, 도쿄에 도착했다.

에키벤과 맥주

최와 박은 도쿄에서 일주일 정도 머무를 건데 그중 3박4일은 최의 여동생과 조카 다섯 명과 함께 지낼 예정이었다. 최와 박은 나고야에서 신칸센으로, 최의 여동생과 조카들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도쿄에 도착해, 랑데부했다.

단둘이 다니다가 8명이 다니다 보니 밥 한 번 먹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일본의 식당은 작은 곳이 많아서 8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곳을 찾기도 힘들고, 식당에서도 한꺼번에 8명이 들어오면 한꺼번에 주문을 받아야 되니 별로 반기지 않는 것 같다. 유명한 오코노미야키집에서도 라멘집에서도 일행이지만 따로 앉아 먹었다.

최와 박에게 아이가 없어서 별 제약없이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이지, 아이가 있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것이다. 여행 다니려고 일부러 아이를 안 낳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긴 하다. 어린 아이를 베낭처럼 메고 다니는 커플을 여행 중에 종종 만나긴 했는데, 2013년 유럽여행 때 베낭 무게 때문에 최는 짜증을 냈다. 내 아이라고 새털처럼 가벼울 리 없지 않은가. 아이가 스스로 걸어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기까지 기다리는 것도 조바심 날테고, 아이에게 투입되는 물량 때문에 여행비 마련도 어려울 것이다. 여차저차 여행비를 마련해서 아이랑 다닌다고 해도 학교 문제 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래저래 육아를 하는 부모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조카들과 다니다 보니 코스도 아이들 위주로 오다이바의 건담, 디즈니 랜드 등으로 짰다.

오다이바의 건담을 알현하기 위해 숙소 근처였던 아사쿠사에서 배를 탔다.

아사쿠사에서 오다이바로 가는 배 안에서

오다이바에는 건담이 실물 크기로 외부에 전시되어 있는데 일정 시간마다 움직이며 변신 쇼를 한다. 외부 전시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낮에도 쇼는 있지만 로봇의 몸체에서 빛이 나오며 움직이기 때문에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오다이바의 건담

육중한 로봇이 걸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제자리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것뿐인데 움직일 때마다 탄성이 나왔다.


디즈니랜드 입장권은 한국에서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구매했다. 디즈니랜드는 처음이라 입장을 했어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사전에 디즈니랜드 백퍼센트 즐기기와 같은 포스팅을 읽고 공부를 했어야 했다.

인기 많은 놀이기구의 대기줄은 길었고 쾌락은 짧았다. 예약제도 운영되고 있었지만 사용 방법을 정확히 몰라 이용하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자마자 돗자리 펴고 땅바닥에 앉길래 '왜 저러지?' 했다. 의문은 해질녘에서야 풀 수 있었다. 알고보니 디즈니랜드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퍼레이드 공연이었다. 하루에 몇 차례 정해진 시간에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모양인데 다행히 마지막 퍼레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여전히 인기가 있었던 겨울왕국 퍼레이드 공연이 펼쳐졌는데 일본어 해설을 알아듣지 못해도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었다. 저녁이 되자 추위에 벌벌 떨렸지만 비싼 입장료를 생각하니 뽕을 뽑아야지 싶어 미적거리다가 기념품 숍에서 돈만 더 털렸다.


최의 여동생과 조카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같은 아사쿠사 역에서 산 표가 지하도를 건넜다고 무용지물이었다. 민영화되어 있는 일본 지하철은 호선마다 회사가 달라 새로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두명도 아니고 6명의 표를 그냥 버려야 하는 건가? 일본에 자주 오는 최와 박은 일본교통카드인 스이카가 있어서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없었다.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그럼 어떻게 하냐고 역무원에게 물었더니, 잘못 산 표는 당일 안에 환불이 된다고 한다. 비행기 시간이 급했던 터라, 환불은 나중으로 미루고 그 호선에서 파는 지하철표를 사서 공항버스를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마지막까지 야단법석을 떨며 조카들을 공항 버스에 태우고 나니 그제야 살 거 같았다. 그제야 도쿄 날씨가 느껴졌고 풍경이 보였고 밥맛이 돌아왔다. 다시 아사쿠사로 돌아와 잘못 산 지하철표를 환불하고 아사쿠사 주변을 돌아다니니 마츠리(축제)가 열렸다. 조카들이 마츠리를 보고 갔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올라왔지만, 최와 박, 두 사람만 오롯이 남았다는 것이 더 소중했다. 그래 뭐 어차피 우리는 이기적인 사랑꾼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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