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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Feb 06. 2020

사랑하는 대상은 미지의 여행지

나고야에서 늘어진 시간들

게로 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나고야(名古屋)에 내리니 방금 떠나온 곳이 시골이었음이 실감 난다.

나고야에서 계획한 것은 딱 한가지. 나고야 맥주공장.

맥주공장 예약은 내일이라, 숙소에 짐을 풀고나니 딱히 할 것도, 갈 곳도 없었다. 숙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Denny's)를 발견했다. 일본 소설과 영화에서 도망자가 지인을 접선하는 장소라든지, 가출 청소년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종종 등장하던 일본의 페밀리 레스토랑. 언젠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 언젠가가 이때였다.

그렇다! 일본은 패밀리 레스토랑에도 흡연석이 있다.

특색은 역시 흡연석이다. 박은 당시 흡연자였기에, 최는 가족 식당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으면서도 흡연석을 마련한 것이 흥미로워서, 흡연석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은 잊을 수 없는 맛은 아니었지만 꽤 훌륭했고 메뉴를 보면 서양 메뉴를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것이 돋보였다.


다음날 드디어 고대하던 기린 맥주공장을 향해 길을 나섰다. 여학생들의 뒷모습이 여기가 일본임을 다시 한 번 실감케한다. 멀리서 기린 공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린 간판만 봤는데도 표정이 밝아졌다.

최와 박이 예약한 타임에 투어객들은 단 두 명. 최와 박 뿐이었다. 투어가 취소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불안해하는데 2명이라도 어김없이 진행하는 일본이라는 나라! 근데 취소가 안 돼도 부담이다. 박이 아는 일본어는 하이자라(재떨이)와 나마비루(생맥주) 밖에 없다. 최는 가이드에게 최대한 천천히 말해달라고 했다. 친절한 일본인은 정말 천천히 또박또박 설명을 해줘서 대부분을 알아들었다고 착각했다.

기린 맥주공장은 그동안 다닌 일본의 여느 다른 맥주공장에 비해 최첨단이었다. 홀로그램 등 첨단의 기술을 경험할 수 있었다.

첨단 기술의 기린 공장

가장 재밌었던 건 기린 맥주 라벨에 기린(キリン)이라는 글자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맥주 라벨에 숨겨진 キリン(기린)
맥주 공장 투어 마지막에 주는 공짜 맥주와 스낵

어김없이 맥주 3잔과 스낵은 공짜였고 최와 박은 피날레를 맘껏 즐겼다.


나고야의 첫인상은 ‘도시구나’ 정도였다. 후쿠오카에서 일본의 알프스인 타카야마로 가기 위해, 또 타카야마에서 게로를 거쳐 도쿄로 가기 위한 경유지가 아니었다면 나고야를 여행지로 선택할 일이 있었을까? 그래서인지 나고야에서의 시간들은 느리게 흘렀던 것 같다.

나고야 성이 유명하다길래 나고야성으로 갔고, 시장을 좋아하니 재래시장을 검색했다.


나고야 성으로 가는 길목에 우연히 발견한 노(能) 전용 극장. 무료라서 들어가봤다. 노(能)는 현존하는 연극 중에 세계 최고의 것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데. 최고면 최고지, 최고중 하나는 또 뭔가 싶다.

노 전용 극장
나고야 성
나고야 성 입장권과 내부

나고야의 매력을 새롭게 알게 된 건 <고독한 미식가> 나고야 편 때문이다. 최와 박은 드라마를 보고 나서야 나고야에서 먹었던, 혹은 먹어야 했던 음식들이 비로소 기억되는 거 같았다.

나고야 명물들 : 대만 라멘과 닭날개튀김(手羽唐 ; 데바토라고 읽는 거 같은데 잘 모르겠댜)과 된장소스 돈까스 꼬지(미소쿠시카츠 みそ串カツ)
나고야 명물 대만 치킨

여행이란 게 미지의 영역을 알아가는 재미일까? 미리 찾아둔 정보를 확인하는 재미일까?

둘 중의 하나일 수가 없고, 두 가지 모두겠지만, 최와 박은 미리 많은 정보를 검색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서 망하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우연한 기쁨을 누리는 경우도 많다.

나고야의 우연한 기쁨은 다치노미(立ち飲み)이다. 일본에는 다치노미(선술집)가 많은데, 말만 선술집이 아니라 정말 술을 서서 마신다. 주방과 주방을 둘러싼 테이블이 술집 공간의 다인데, 집세가 비싸니까 발달된 형태가 아닐까 싶다. 또 일본에서는 혼밥뿐 아니라 혼술하는 사람도 많이 보였는데 혼자 한두 잔 하기에 다치노미는 딱이다.

다치노미(선술집)

사랑도 여행과 비슷한 거 같다. 최와 박은 17년을 알고 지냈지만 서로의 정보를 검색하지 않았기에 몰랐던 구석이 많았다. 예기치 못한 상대의 행동에 실망을 하기도 하고, 기대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감동하기도 한다.

낯선 여행지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도 타인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와 비슷한 거 같다. 여행지에 랜딩후 처음에는 신기해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칠세라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현지 문화와 물가에 익숙해져 간다. 여행지에 익숙해져도 돌발 상황에 당황하게 되고, 예상치 못했던 풍경에 감탄하게 될 때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할 때 손 끝만 스쳐도 설레고 서로의 취향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어하지만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상대를 상대 자신보다 더 잘 안다고 착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 파악했다고 생각해도 내 취향과 기분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듯 상대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니 예단하면 실망한다. 사랑하는 대상은 예측할 수 없고 결국 미지의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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