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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Jan 23. 2020

잊을 수 없는 맛은 있어도 잊을 수 없는 사랑은 없다

후쿠오카에서 술과 안주의 나날들

후쿠오카 선착장에서 하카다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보니 '여기가 정말 일본이 맞구나!' 싶은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기모노를 차려입은 젊은이들

졸업식이라도 한 걸까? 성인식인가? 기모노를 차려입은 청춘들이 몰려다니고 있었다.


하카다역에 내려 아사히 맥주 공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예약한 시간에 못 댈 거 같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숙소로 들어갈까 갈등도 했었지만, 혹시나 다음 타임에 넣어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버스에 올랐다.

일본 버스는 구간마다 요금이 다른 것 같았다. 탈 때 1번 번호표를 뽑았으면 내릴 때 280엔을,  6번이면 170엔을 내면 된다.

포기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친절한 아사히 직원은 다음 타임에 관람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후쿠오카 아사히 맥주 공장 로비에는 아사히 맥주 캔이 늘어서 있는 포토월이 있는데 이 때는(2017년 1월) 찍는 방법을 몰라서 엉뚱한 사진만 찍어댔다. 2년 뒤인 2019년 9월에야 3D 입체감이 나게 제대로 찍을 수 있었다.

(좌) 2017년에 엉뚱하게 찍은 사진 (우) 2019년에 입체감 있게 캔을 빼는 장면을 찍은 사진

맥주 공장 투어를 마치면 간단한 과자 한 봉지와 맥주 3잔을 준다. (한국어로 설명해주는 타임도 있다.)

박은 일본어는 물론이고 외국어를 1도 모르지만 마지막에 받는 이 작지 않은 선물로 충분히 보상 받는다. 맥주공장 근처에 산다면 투어를 매일 신청할 거다, 아마.

맥주 공장 투어 마지막에 공짜로 주는 스낵과 맥주

공짜 맥주를 먹고 나면 기념품 숍이 있는데 전용잔과 티셔츠, 손수건, 마그네틱 등 여러 제품들이 호객 행위를 한다. 북유럽까지 여정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건조 식품 세트를 구비했다.

아사히에서 나온 동결건조 제품 세트. 현지식을 즐기는 박이지만 국물 문확가 아닌 외쿡에서 늘 국물을 그리워하는데 두달 반의 여행 기간 동안 박의 국물 욕구를 충족시켜준 제품.

아사히 공장에서 낮술을 해주고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벌써 저녁 때다.

후쿠오카에 왔으니 모츠나베(もつ鍋) 정도는 먹어줘야지.

일본에도 원조가 있더라. 모츠나베 원조집이라는 에치고야(えちごや)를 찾았다.

越後屋(에치고야)


모츠나베 전에 나온 애피타이저가 인상적이었고 모츠나베도 맛있었다. 그러나 2015년 9월 우연히 들어간 술집에서 먹은 모츠나베만큼 잊을 수 없는 맛은 아니었다.

2015년 9월에 우연히 만난 인생 모츠나베

인생 모츠나베의 특징은 부추 위에 산처럼 우엉을 쌓아주는 것이었는데, 이 우엉 맛이 신의 한 수다. 리필이라는 게 없다는데도 주인장에게 한 번 더 부탁해 우엉을 리필해서 먹었는데, 리필을 해도 맛있더라.

우엉이 신의 한수인 모츠나베를 먹을 수 있는 はかた 美人(하카다 비진) 좌표: https://goo.gl/maps/B4Tr7gBCb8AKAU8V6

그 맛을 잊지 못해 2019년 9월 후쿠오카에 갔을 때 다시 찾았는데 만석이라 다시 맛 보지 못했다.

다시 맛 봤더라면 그 때 그 맛의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반대로 실망만 했을까?


귀한 시간을 내고 모아둔 돈을 축내서 가는 여행이라서 비행기로 10시간이 넘는 곳은 잊을 수 없는 맛이라도 다시 맛볼 기회를 좀처럼 만들기 힘들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1~2시간 비행에 비자도 없다.


2015년 5월 도쿄역, 귀국 6시간 전.

도쿄에서 마지막 식사에 대해 의논했다. 같은 과 동기, 조와 함께 한 여행이었는데 조가 세상에! 스파게티를 먹잔다. 얼씨구?! 박까지 동조한다. 일본의 스파게티를 먹고 싶었다나?!?

최는 반대했다. 속으로만....

아니, 일본에서 뭔 이태리 음식이냐고!?

최는 속마음을 숨긴 채 프론토(pronto)라는 이태리 음식점에 끌려 들어갔다.

게다가 이것들이 둘 다 담배를 핀다고 흡연석에 자리를 잡는다. 최는 평생 담배를 핀 적이 없지만, 일본의 흡연석을 흥미롭게 생각하기에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대신 신중하게 주문했다. 물론 생맥주와 함께.

급반전! 음식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맛있고 특색있는 스파게티는 처음이었다.

프론토의 일본풍 스파게티들. 오른쪽 대각선 아래의 네모난 것은? 그렇다! 일본에서는 스파게티집에서도 담배를 필 수 있다.

주방을 힐끗 보니 생면을 쓰는 것 같다. 생면이 비결인가? 아냐, 소스가 달라!

여튼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이후 일본을 갈 때마다 거의 들르는 집인데, 알고보니 체인점이었다. 우에노에서도 나고야에서도 먹어봤으나 역시 도쿄역이 젤 잘한다.


다음으로 잊을 수 없는 맛은 카마쿠라 에노시마의 쿠아 아이나(KUA AINA) 햄버거다.

햄버거가 맛있어 봤자겠지 했지만, 정말 맛있다.

쉑쉑 버거도 먹어봤고 각종 수제 햄버거도 먹어봤으나, 쿠아 아이나가 최고다. 게다가 세트 메뉴에 대용량 맥주를 선택할 수 있다.

이후 스카이트리, 오다이바에서도 쿠아아이나를 다시 먹었는데 에노시마 섬이 최고다.

맥주 포함 세트 메뉴가 한국돈으로 이만원 정도 하니까 싼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비싼 값은 한다. 여기서도 담배를 필 수 있다.

옆테이블의 포르투칼인가에서 온 외국인과 한참 영어로 대화했다. 여행의 또다른 묘미다. 낯선 사람과 대화가 통했다고 착각하는 거. 비영어권 사람들이 영어로 하는 대화가 통하면 얼마나 통했겠나. 술기운과 여행중이라는 기분에 들떠 괜히 자신이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한다. 우연한 환대에 내가 호감형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환영 마사지를 받는다. 이런 게 여행의 맛이 아닐까?

카마쿠라와 에노시마 섬은 <슬램 덩크>의 성지이자,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배경이다. 봄에 갔으니 다른 계절인 여름, 가을, 겨울도 모두 경험해보고 싶은 멋진 곳이다. 같은 여행지의 다른 계절을 경험해볼 수 있는 것도 일본 여행의 묘미다. 가깝고 비자도 없으니까.


잊을 수 없는 맛이지만 아직 다시 맛보지 못한 맛이 있다.

벨기에 우스텐데(OOSTENDE)의 소라. (https://en.m.wikipedia.org/wiki/Ostend)

우스텐데 해변가 포장마차에서 끓여서 파는 소라

2013년 5월 유럽 여행 때, 벨기에 브리주(브뤼헤라고 하는지 브리주라고 하는지 아직 정확한 발음은 모르겠다)에 갔을 때다. 유레일 패스를 끊어서 갔기에 아무 구간이나 공짜(는 아니지만)로 탈 수 있어서 정처 없이 기차에 올랐다. 구글 지도로 해변가라는 정보만 가지고 우스텐데(이 지명 역시 정확한 발음을 모른다)에 내렸다. 북쪽이라 그런지 바다는 거칠고 사나와보였다.

근처 가게에서 캔맥주를 샀기에 안주를 찾고 있는데 마침 반가운 포장마차가 보인다. 한국 음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소라탕? 같은 음식이 있어 샀는데....

아~~~~ 너무나 맛있다. 이것이 인생 소라다!

돌아가는 길에 아쉬워 소(小)자를 하나 더 사먹었는데 대(大)자로 사지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

아.... 벨기에 우스텐데는 다시는 못 가볼 거 같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이지만 다시 맛 볼 수는 없을 거 같다.

지나간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잊혀지지만, 그 때 그 맛은 다른 어떤 맛으로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남겠지만, 그 때 그 맛의 소중함은 영원하니.... 다시 입맛을 다셔본다.

다시 먹지 못했기에 더 잊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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