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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자 혜운 Jan 09. 2018

[자존심 버리기 4] 부족한 내 모습 드러날까 두려웠어


“아이고, 현석아 양말 벗겨졌어.”
“아닌데요, 원래 이렇게 신고 다니는 건데요.”
“그런데 여기서는 바닥이 추워서 감기 걸릴까 봐 걱정돼서 말이야."
  
“아, 문이 빠졌구나. 놀랬겠다”
“아닌데요. 일부로 이렇게 한 건데요. 이렇게 놀려고요. 여기 봐봐요. 그쵸?”


놀이실에서 만난 현석이는 활동량이 많고 주의 집중이 어려워서 또래 관계에서도 소외당하고 수업 시간에서도 지적을 많이 받아서 상담 센터에 방문을 했던 초등학교 1학년 남아였다. 이 친구를 만난 지 거의 4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 친구가 내게 보였던 모습은 아직도 내게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양말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노는 현석이가 감기 걸릴까 봐 걱정되고, 부산하게 움직이다가 장난감을 망가뜨린 줄 알고 긴장한 표정으로 있는 현석이가 놀래고 두려워할까 봐 걱정돼서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해 비난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경계하던 현석이의 말과 행동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요즘 들어 과거의 내 모습에도, 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차분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처음 집단상담을 하면서 고민되고 어려운 것들이 있어서 슈퍼바이저에게 지도를 받기도 하고, 동료 상담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럴 때, 누군가 나에게 상담자로서 혹은 집단 리더로서 부족한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할라 치면 나는 꽤 많이 이렇게 반응을 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라는 말들로 시작하는 변명을 해댔다.
  
사실 내가 못하는 게 아니라, 네가 잘 모르는 거라고. 사실 나 이런 부분, 이런 부분 잘 하고 있다고 해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더 잘 알 것 같다. 내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그런 부분들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은 부분이 많았기에 자꾸 “아닌데?!”라며 상대방의 피드백을 모두 거부했던 것이다.  부족한 내 모습이 드러나면 모래성 같은 내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부득부득 지켜내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차분히 인정을 하고 나니, 누군가 나에게 능력적인 평가를 하게 되더라도 날을 세워 방어하려는 모습은 사그라들고 오히려 상대방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마음에 대해 더 들을 수 있게 되는 여유도 조금씩 생기게 됐다.
  
이제는 부족한 내 모습에 대해 받아들이는 게 많아진다. 나에게 들이댔던 높은 기준들, 당위성들을 내려놓게 되기도 하고, 부족하고 못난 모습으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며 지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신기하게도 타인의 마음에 대해, 타인의 힘듦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도 많이 생기기도 하고, 수용하는 부분도 더 넓어졌다.
  
내 스스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게 되니 타인도 진심으로 이해가 되고 수용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 혼자였다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기준을 높이 세우며 잘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대해 빈틈없이 비난하며 집요하게도 내 부족한 모습을 까발리게 했던 내 동료들, 그리고 그렇게 까발려질 때 외롭게 두지 않고 옆에서 계속 지켜봐 줬던 내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집단에 함께 참여하는 집단원들도 한몫했다. 내가 잘하려고 하는 모습에 열중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보지 못할 때도 가감 없이 피드백해주고, 내가 능력 없이 못난 모습 보여도 내 마음을 받아주는 집단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상담자만 내담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내담자 또한 상담자의 성장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서로가 영향을 주며, 서로의 마음을 중요시하며, 존중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며 좋을 것 같다. 능력으로 사람을 재고 따지며 등급을 매기는 사이가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관계, 이런 관계를 맺기 위해 오늘도 집단 상담에 온 마음을 다해 참여하게 된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왜 저렇게 살아?”, “왜 저렇게 행동해?”라며 이해해주지 못하고 나의 틀로만 바라봤지만, 이제는 조금씩이나마 “그럴 만하겠다.”, “힘들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자연스레 올라와서 나도 편안해졌다.
 


해원 박지선

상시상담소에서 개인상담 및 집단상담 운영 중. 

홈페이지: 상시상담소(상담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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