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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자 혜운 Feb 06. 2018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얼마 전, 내가 진행하고 있는 집단 중 하나를 없애려고 했다. 그냥 내 개인적인 판단하에 강제적으로 말이다.

  
우선,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통보를 했다. 집단을 없앨 예정인데, 그 이유는 집단에 함께 있는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서로를 더욱더 외롭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말하기를 2월 말에 다 함께 종결회기를 가질 것이니 그동안 못다 한 말들은 그전에 열심히 표현해 보자고 했다.
  
글을 보자마자 집단원들 중 몇몇은 내게 연락해서 ‘왜 당신 마음대로 집단을 없애냐’고 항의하거나, ‘자초지종을 설명해달라’고 따지듯 물었다. 나는 모든 질문이나 표현들에 대해 최대한 대답을 아끼며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였다.
  
종결을 통보한 후 2주 동안, 몇몇 집단원은 예정된 다른 일정이 있었기에 참석을 하지 못했고 소수의 인원들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소수 정예의 집단원들 중, 한 집단원이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나 집단을 오래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걱정이 되어 최대한 검열하며 표현을 아꼈던 사람이었기에 나도 많이 놀라기도 했다.


“왜 해원님 마음대로 집단을 없애요?”

“서로에게 더 상처를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요. 우리는 밖에서도 충분히 소외당하고 외면당해서 슬프고 아팠어요. 누구 하나 내 마음을 알아주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아팠다고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뭐하고 있어요? 밖이랑 뭐가 다르냐고요! 나는 이렇게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도움도 안 되고, 오히려 더 악영향만 미치고 있는 집단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집단 없앤다고 해도 아쉬워할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결정했죠. 다들 헤어지자 말도 못하고 그냥 습관처럼 나오는 것 같으니 내가 칼을 뽑아 들자. 이렇게요.”

“누가 습관처럼 나온다는 거예요. 누가 아쉬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냐고요. 나는 아니란 말이에요. 나는... 나는...”


그는 집단을 없애겠다는 말에 울먹이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게 되었다. 집단에 대한 마음이 어떠한지, 다른 집단원들에 대한 마음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나에 대한 마음은 어떠했는지 말이다. 집단이 끝난 후, 주 중에도 연락이 왔다.  

한 주가 지난 뒤, 우리는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다시 함께 모였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그 집단원은 이제 다른 집단원에게도 더 강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과도하게 집중해서 마음 하나, 감정 하나 표현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던 그는 집단원들과 더 이상 못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집단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동안 꼭꼭 숨겨두었던 마음들을 다시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 집단원 때문에 마음이 어느 정도 돌아섰다. 집단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에서, 그 집단원이 계속하겠다고 한다면 나도 끝까지 함께 하리라, 남겠다고 하는 사람이 2명이 됐든 3명이 됐든 그 인원수에 상관없이 그와 끝까지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꾼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표현하던 한 집단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집단원들은 반응이 시큰둥했다. 내 말처럼 자신들 역시 회의감이 든다는 표현이 많았다. 그때마다 집단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했던 그 집단원은 계속해서 설득하고 반박했다.
  
또 한편으로는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어차피 종결할 건데 그때까지만이라도 정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하고 가보죠. 이제 헤어질 건데, 그 시간만큼이라도 정말 솔직해져 보자고요. 못 본다 생각하고 말이에요.”


예정된 이별의 힘. 
이성만 발달된 채, 감정적인 부분은 전혀 표현되지 않았던 또 다른 집단원이 감정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마음이 더 크고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또 다른 집단원의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집단상담의 기한 일이 정해지자 더 강하게 마음을 전달하려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마음속에 고이 접어 두었던 마음들. 겁나서 표현 못했고, 자존심 상해서 표현 못했고, 금기시된 감정이라 표현 못했던 그 마음들이 밖으로 드러났다.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갔다. 그냥 무한정 집단에 참여한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더 찐한 마음들이 오고 갔다.

                                                


우리네 삶도 그런 것 같다.
  
죽음이라는 거. 나의 죽음이든 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든 생각해보지 않았고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태어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죽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그런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가혹하고 매정하게 상처 주며 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유한성을 모른 채 말이다. 
  
가까운 이가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같은 시간이어도 다른 느낌으로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언제까지 함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나 또한 가족들과의 갈등 끝에 항상 생각한다.
‘지금이 마지막이라면, 내가 사고가 나서, 엄마가 사고가 나서, 아빠가 사고가 나서, 오빠가 사고가 나서. 지금 이 시간 이후에 못 보게 된다면, 내가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쉽게 답이 나온다. 내일 당장 못 보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행동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게 된다.
  
경험이 없다면 상상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만약 내 옆에 있는 이 사람과 갑작스럽게 이별하게 된다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행동은 무엇일까.
표현하지 못해서 아쉬운 말은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 됐던 떠오르는 그것들을 지금 이 순간부터 내 옆 사람에게 표현하고, 행동해보자. 야속한 세월에 원통한 마음, 가슴 치며 후회하지 않게끔 원 없이 표현하고 먼저 손 내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해원 박지선
상시상담소에서 개인상담 및 집단상담 운영 중
홈페이지: 상시상담소(상담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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