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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자 혜운 Aug 05. 2016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TV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구하는 장면들을 볼 때가 있다. 그때 구조대원들이 항상 강조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현재 위험에 처해있는 동물들은 모든 외부 자극을 위협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동물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다가가지만 그들은 우리를 두려운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강하게 거부를 하는 동물들에게는 마취 주사를 맞힌 다음에 구조 작업을 착수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 동물을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모순되게도 그 동물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들을 사지에 몰린 것처럼 느끼게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인간관계에서도 존재하는 것 같다. 다른 직업에 비해 좀 더 많은 사람들-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을 갖게 되다 보니, 세상이나 타인을 매우 위협적인 것으로 여기는 아이들이나 성인들과도 마주하게 될 때도 있다. 특히, 아이들인 경우에 화를 내거나 무서운 복장을 하고 있지도 않은 나를 보고도 겁에 질려하거나 경계를 하는 경우, 혹은 상식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는 재미있는 장난감들로 가득 찬 놀이실을 보고도 긴장하고 낯설어하는 경우. 이럴 때는 나는 부모와 함께 초기 양육환경에 대해 탐색을 해 나아간다. 그 아이가 세상과 타인을 지각하는 일종의 '틀'을 만들어 가는 시기에 그 아이에게 세상이나 타인은 위협적인 존재라고 느낄 만한 환경이었는지 혹은 아이의 심신의 상태에 톤을 맞추어 아이가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지각하고 타인을 신뢰해도 된다고  믿는 환경이었는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다르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점차 연령이 증가하면서 그 '틀'을 통해서 상황과 타인을 판단하고 이해하며, 여러 장면에서 일반화되어 사용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그 '틀'이 만약 어느 한쪽 극단에 있다면 상대방의 행동이나 상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왜곡된 해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스스로 바꾸려고 시도하거나 누군가 지적을 해주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 및 판단을 수정하는 일은 흔치 않다. 

내가 마주하는 장면 중에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상대방은 관심의 손길로 다가가는 것이었는데 정작 그 당사자는 상대방의 관심을 위협적인 것으로 오해석하며 그 손을 뿌리치는 것이었다. 우리가 상황을 위협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면 상대방이 어떤 마음에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왜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지, 그 밑마음은 무엇인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당장 눈앞에 생존이 위태로운데 어떻게 여러 가지 상황적 요인들을 고려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당장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빠른 선택을 하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이미 설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에서 한가로이 여유를 부리며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서 질문을 할 때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전과 다른 관계 패턴을 가지려면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왜곡된 시선을 바꾸려면 끊임없이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내 생각과 다르다는 반증 경험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변화란 있을 수 없다. 상대방의 마음이나 내가 마주하는 환경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더라도 직접 부딪히고 직접 대면해야 그 사람의 마음은 내가 추측했던 것과 다르고, 내가 생각했던 상황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말이다. 

참으로 모순되게도 상처가 있는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더 상처를 받게 되고, 상처를 받더라도 변화를 해보겠다고 뛰어들면 오히려 상처가 더 아물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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