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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자 혜운 Apr 04. 2018

초보 운전자는 두렵지 않다

출처: 당무의 유라시아 여행기


처음 운전을 연수 받던 그때의 희열은 잊을 수 없다. 넓은 도로의 한적함. 시원한 바람과 빠른 속도의 상쾌함. 내가 차를 운전해서 그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게 신기했고 재밌었다. 옆에 앉아 계시던 선생님조차 내가 처음 운전하는 것을 믿지 못한다는 듯이 '참 겁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 

초보 운전자는 겁이 없다. 두려울 것이 없다. 오히려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오로지 시동을 켜고, 엑셀을 밟으며 핸들을 잡고 앞을 보며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가기만 하면 세상 즐겁고 신이 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몸에 운전이 익숙해질 때 즈음, 다른 고려 사항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안전하게 하고 있더라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해물이나 졸음운전자, 혹은 초보운전자 같은 도로 위의 무법자들로 인해 의도치 않게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정기적으로 차를 점검하지 않으면, 차체에 문제가 생겨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운전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운전에 숙련되어 갈수록 고려할 사항들이 많이 보이게 돼서 조심스러워졌다. 

비단, 운전뿐만이 아닌 듯하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듯하다. 

관계 안에서 내 감정만 눈에 보이고, 내 아픔만 눈에 보였을 때는 그렇게 겁이 나지 않았다. 좋으면 다가가고, 싫으면 물러나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말했다. 하지만 내 감정에 대해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되다 보니, 다른 사람의 감정과 마음이 눈에 보였고, 너와 나의 관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도 눈에 보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 그러했다. 직업적으로도 남들보다 더 많이, 더 깊게 타인의 마음과 감정을, 내 마음과 감정을 들여다보게 되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와 나 사이에 의도치 않은 상처들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말 한 마디가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 주변 상황도 살피고 잠재 가능성의 위협을 감지하며 운전하지 않으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듯이, 관계에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알게 모르게, 의도했든 안 했든,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는 거. 그게 참 무섭고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무섭다."
그 무거운 마음이 여전히 덩어리처럼 남아 있다.




"경찰이라고 사건, 사고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경찰이기에 두려움을 누르고 사건을 마주할 뿐이다. 더 깊이 더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

 
드라마 [라이브] 중 나왔던 대사인가 보다. 근래에 내가 사람을 대하는 사람으로서 무서워하는 마음을 드러냈더니, 옆에 있던 동료가 이야기해준 말이다.  

나 또한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나도 인간이고 사람이다 보니 모든 상처를 다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가 나와 함께 그 상처를, 상처가 되지 않게끔 서로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상대를 아프게 했던 부분, 그리고 상대가 나를 아프게 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아픔을 알아줄 수 있는. 그런 관계로 발전해 갈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그렇게 되기를 간곡하게 바란다. 나 또한 무섭고 두렵지만, 나는 상대와 그 두려운 길을 함께 걸어가고픈 마음이 있다. 

그래서 우리 함께 피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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