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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자 혜운 May 01. 2018

서운하다고? 너 참 유치하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게 되면 상대방이 상처받게 될까 봐 두렵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자신은 굳이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대화 패턴을 살펴보면 표현 방식은 부드럽고 친절하지만 표현된 내용은 상대방을 비난하고 질책하는 내용들이 즐비했다. 

그가 만약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정적인 영향을 눈곱만큼도 받지 않는다면. 누군가로 인해 서운하거나, 억울하거나, 분노하는 일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는 끝까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대로 서로 상처받을 만한 일들이 생기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겠지 싶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에 타인에 의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고, 이러한 불편한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다만 관계에서 파생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모두 동일하지는 않을 뿐이다. 

느껴지는 감정, 표현 방식, 표현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상처 주고받기 싫어요."
"내가 화내면 상대방이 상처받잖아요."이다. 

이 말은 백 프로 틀린 말인데, 입장 바꿔 생각하면 답이 쉽게 나오는 문제다. 

내가 상대방에게 화가 나서 그 화를 상대방에게 표현했다고 가정해보자. 상대방은 나와 같이 화를 내며 감정적인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매우 이성적으로 나의 언행에 대해 판단하고 있다면 내 기분은 어떠할 것 같은가?

예를 들어,
"봐봐, 지금 맥락이 그게 아니잖아. 아까 네가 사과를 해놓고서는 왜 지금에 와서 화를 내고 있는 거야. 그럼 아까 네가 한 사과는 나한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은 거였네? 그러면 아까 사과를 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나'라는 사람이 지금 왜 화를 내는지, 내가 왜 그렇게까지 서운해하는지 전혀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 나의 행동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하나하나 따져 묻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나의 행동이 잘못된 거라서 야단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이성을 잃은 채 혼자 감정적으로 화가 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유치하다고 여기거나 수치스럽게 여기게 될 것이다.  차라리 상대방이 '나'의 화에 대해 맥락에 안 맞는다며 화를 냈다면 '나'라는 사람이 그 당시에 느꼈을 감정은 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은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서, 고상한 사람으로서, 꼿꼿하게 이성을 차리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에 '나'라는 사람은 그저 하등한 사람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만약 지금 당신도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에서 감정적인 대화가 오갈 법한 상황에서 상당히 이성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고심해 보기를 바라는 바이다. 나의 이성적인 태도가 상대방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끔 만드는지 말이다. 

상대와 함께 하기 위해서 우리도 같이 유치하고 치졸하고 혹은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해원 박지선
상시상담소에서 개인상담 및 집단상담 운영 중
홈페이지: 상시상담소(상담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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