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기록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책임지는 사이

by 박지선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아쉬움이 남는 관계는 끝나고 나서도 상대방의 이야기가 거듭해서 들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때와는 다르게 들리고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많아진다.그때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심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지 그제야 그 사람의 입장에서 들을 수 있게 된다. 그 당시에는 내 생각에 빠져서, 내 말대로 하는 게 우리 관계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는 자만심에 빠져, 상대방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던 적이 있다.

특히 상대방이 내 삶에 깊게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일 경우에,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여겨지는 경우에 내 주장은 더욱 강해진다. 그 순간에는 내 말이 가장 옳다고 생각을 한다. 내 옳은 생각을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들을 수 있을지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설득이 잘 될 것인지 그 점이 가장 중요했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차후의 문제일 뿐이었다. 오롯이 우리 관계에서 벌어진 갈등이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우리 관계를 책임지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가능했던 행동이었다.

실제로 내 말이 맞을 때가 맞다. 상대방의 어떤 행동 특성이나 마음가짐이 우리 관계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기도 했기에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상대방의 행동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렇게도 쉼 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딴에는 지금 당신과의 관계가 내게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고귀하고 순결한 전제도 있었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그 전제는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졌던 폭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갈등이 깊어졌던 중요한 본질은 내 불안에 있었다.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나 스스로를 칭송해왔지만, 나중에 벌어질 힘든 일들에 대해, 게다가 상대방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내가 책임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하고자 그렇게도 개선시키고 싶었던 욕구가 컸던 것이었다. 결국 간섭과 관여는 널 위한 게 아니라 사실은 날 위한 것이 더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거다. 나에게 피해 주지 말라는 일종의 방어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관계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 그것은 미래에 벌어질 일들, 그것이 예상 가능하지 않은 잠재적인 위험이 포함되어 있을지라도 그 모든 것을 함께 짊어지고 가겠다는 의지가 포함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인 것 같다. 우리에게 처한 상황적 요인이든, 상대방의 개인적인 요인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나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 생기더라도 내가 수용하고 받아들이겠다는 그런 책임을 갖고 서로를 대하는 것이 관계에 대한 진짜 책임인 듯 하다.

알기는 진작에 알고 있었겠지만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은 여전히 오락가락한다. 내 것으로 온전히 흡수되지 않아서 안전성과 지속성이 떨어진다.

영화 안녕, 헤이즐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상처받는 것은 선택할 수 없지만, 누구에게 받느냐는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난 너에게 상처받는 것을 선택하겠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통제할 수도 없는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들도 많은데 어쩌자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불행들을 다 통제하려고 했는지 그것이 참 어리석게 느껴진다. 내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인지, 아니면 삶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인지 여하튼 나의 시야가 협소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편치 않은 일들이 많을 것이고, 그것이 자명한 사실이라면, 그 힘든 시간들, 그 힘든 과정들을 나는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술 좋아하는 아버지의 그런 낙을 존중해준 어머니가 대단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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