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나는 '잘 웃는다'라는 평을 많이 들었다. 잘 웃고, 언제나 씩씩하고, 밝은 사람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하고,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으며, 사람 관계에 그다지 연연해 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던 거다. 그런 모습들 중 일부분은 진짜 내 모습이기도 하지만, 일부분은 만들어진 사회적 이미지에 불과했다.
상담을 받으면서 나 자신을 그냥 생긴 모습 그대로 꺼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생긴 대로 흘러가게 두었더니 정말 심심할 틈 없이 너울대는 감정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섬세하고 예민한 것은 아니다. 주변 사람의 말과 행동이나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찰떡같이 이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속이 평평하고 고른 상태가 아닌 형형색색의 모습을 갖고 있었던 거다.
내 체력 또한 호르몬의 영향도 잘 받는지라, 그 반응은 곧 감정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 달에 2주간은 조증 상태로 즐거운 기분이 한층 업되고 에너지도 넘쳐 나서 하고 싶은 일들도 많아졌다. 그 시기에는 격렬한 움직임을 통해 땀이 흠뻑 나도록 운동도 한다. 하지만 나머지 2주 동안은 고갈된 체력과 함께 넘치던 기운도 다 빠져나가서 기분도 울적해지는 상태에 갇히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을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못된다. 한번 바짝 끌어댕겨서 미친 듯이 즐겁게 일하다가 갑자기 끈 놓친 사람마냥 축 늘어져 아무 일도 못하고 내 감정에 취해 정신 팔려 있기도 하다.
예전 같았으면 나의 비일관된 모습에 비난을 하고도 남았다. '왜 성실하고 꾸준하게 작업하지 못하는지.', '왜 이렇게 자기감정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지.' 등등. 비난할 구석을 찾으면 얼마든지 잘 찾아낼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상담을 받거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안에서는 꽤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숨겨져 있는 내 모습의 구석구석까지 없애려고 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다 보니 비일관된 그 모습 속에서도 일정한 규칙을 찾을 수 있었다. 규칙을 찾으니 그 규칙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도 찾게 됐고, 감정선의 파도가 어떤 모양으로 어느 정도의 세기로 언제쯤 올 것인지 대략적으로 예상을 할 수 있게 됐다. 혹은 갑작스럽게 그 파도가 밀려와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당황하지 않아서 다행인 건 그 파도에 내 몸을 싣고 유연하게 흐름을 탈 수 있게 됐다는 거다. 내 감정의 다이내믹을 내가 함께 탈 수 있다는 것은 그 감정을 스무스하게 흘려보낼 수도 있게 된다는 거니까 정말 큰 이득인 것이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 떠있는 서퍼들이 파도의 흐름을 읽고 그들의 몸을 맡기는 것처럼 나 또한 이렇게 저렇게 왔다 갔다 하는 내 감정선을 따라 내 몸을 맡기려 한다. 서퍼가 파도를 뚫겠다며 온몸에 힘을 줘서 돌진하거나 파도가 오는 지도 모른 채 있다가 파도에 전복당하는 것처럼, 나 또한 감정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모르는 척했을 때 내 감정에 더 크게 압도당해서 내가 조절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불편한 감정들을 느끼지 않아야 편안하게 산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는 말처럼 부정적인 감정들도 온전히 느껴야지만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하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에게서 느끼는 그 감정에 대해 알아차리고 수용해줘야 내가 내 감정과 마음을 단도리 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마음이 더 편안해진다.
앞으로 더 받아주련다. 누군가는 그 감정을 부끄럽고 유치하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 순간에 그 감정을 느끼는 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