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그럴까?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잖아.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현빈의 대사다. 대사 한마디에 그 사람의 특성이 녹아든다. 자기 감정이나 욕구를 존중받지 못한 사람. 그래서 내 안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그것을 건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물론, 영화 속에서 인물의 히스토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어떠한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어제와 같은 감정톤으로 아내를 대하며, 떠날 채비를 하는 아내를 돕는다.
#. 중요한 타인(부모, 가족)에게 내 감정과 욕구를 표현했는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면 더 이상 표현하지 않게 된다.
얼마 전 한 집단원이 말했다. 관심받고 싶은데 그 말을 솔직하게 말하기가 두렵다고. 상대방이 틀림없이 거절할 텐데 그 뒤에 따라오는 민망함을 감당하기 무섭다고 말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에 의지하는 사람이 많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체면은 구기지 않으니까 자존심은 지킬 수 있으니까 차선이라도 택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한껏 웅크리며 몸을 사린다. 표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많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로 보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가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상대는 그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대답해 줄 것이다. 상대의 대답을 듣고 속상할 수도 안심할 수도 있다.
‘내가 걱정했던 것만큼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네. 다행이다.’
‘싫어하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아니라고 하네. 다행이다.’
'나를 싫어한다고 직접 들으면 죽을 만큼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네. 다행이다.'
라는 게 안심하는 반응이다. 불안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기에 경험할 수 있는 편안함이다. 만약 표현하지 않았다면 혼자서 걱정하며 눈치 보는 속앓이를 계속했겠지 싶다.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도 안다. 사람마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도 따로 있다. 누구는 애정을, 누구는 서운함을, 또 누구는 창피하다고 말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욕구 또한 마찬가지다. 누구는 식욕을, 누구는 성욕을, 또 누구는 인정 욕구를 표현하는 게 다른 욕구들 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혼자서 의지를 갖고 아무리 다짐해도 솔직해지기 어려운 이유가 그만큼 어려워서다. 그래서 상대가 필요하다. 내가 솔직한 만큼 솔직하게 반응해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 그 마음을 수용해줄 수 있는 사람, 내 마음을 공감하지 않아도 이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하다.
# 드러내는 자와 드러내지 않는 자의 경험 차이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중, 미인대회 무대에서 야릇한 춤을 추는 막내가 사람들에게 야유받는 장면이 나온다. 만약 그 상태 그대로 무대에서 내려왔다면 막내는 오래도록 수치스러운 기억에 힘들어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 가족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가족들은 모욕적인 그 상황에서 막내를 재빨리 빼내지 않았다. 그런 조치는 사람들의 야유가 당연하다고 승인하는 꼴밖에 안 됐을 것이다. 막내가 창피한 행동을 했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막내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가족들도 나를 창피하게 여기는구나.
난 역시 사람들 앞에 나서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
난 부끄러운 사람인 거야.
만약 그 상황에서 막내가 가족들에게 '내가 창피해서 내려오라고 한 거야?'라고 솔직하게 묻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혼자서 고수한다면 막내는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두 번 다시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피엔딩의 영화답게 영화 속 가족들은 막내가 부정적인 자기상을 갖도록 놔두지 않았다. 야유받는 상황에서 혼자 두지 않았다. 무대에 올라 막내와 "똑같이 야릇한 모습으로, 남들이 조롱했던 그 모습 그대로" 함께 춤을 추며 그 순간을 즐겼다. 결국 건장한 관리자들이 그들을 무대에서 쫓아냈지만 그들끼리는 즐거웠다. 가족은 막내가 보여줬던 모습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고 몸소 보여줬다. 자칫하면 막내 스스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기억으로 남을 뻔했는데 가족들 덕분에 그 순간을 그저 재밌고 즐거운, 가족이 함께 했던 기억으로 남게 됐다.
막내에게는 자신을 숨길만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막내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 이에게는 비난이나 조롱거리가 될 수 있지만 소중한 가족에게는 수용받을 만한 모습이었다고 여기고, 어떠한 모습이든 가족에게는 보여도 괜찮다고 안심하게 될 것이다.
#. 내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 그 관계가 더욱 특별해진다.
이제껏 숨겨왔던 내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도 상대가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그럴 수 있겠다'라고 받아주며 상대도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면 영화 속 막내가 경험하는 그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즉, 나의 어떤 모습이어도 상대에게 수용받을 수 있다는 편안함을 느끼고 상대를 신뢰하게 된다. 게다가 그 관계는 '우리만 아는 서로의 진짜 속마음'을 공유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함이 더해진다.
더군다나 오해가 쌓여서 상대의 마음을 의심하고 비난하며 의도치 않게 서로 등 돌리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우리 사이에 팽팽하게 존재했던 눈치싸움이나 자존심 세우기로 불필요한 갈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현빈의 아내라면 현빈이 내게 화를 내고 원망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야 나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내가 남편에게 무엇이 서운했고 답답했는지 말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니 말이다. 나에게 웃으며 대하는 사람에게 침을 뱉을 수 없지 않은가.
응어리진 마음에 꼴도 보기 싫어졌지만 내 감정을 흐드러지게 표현하고 이해받고 나서는 상대에게 한결 따뜻한 느낌을 받아 가까이 하고 싶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고로, 영화 속 현빈도 상대에게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면 달라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싶다.
덧.
솔직하게 내 속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상대가 필요하니 같은 마음으로 서로 노력하는 집단상담 안에서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집단상담 신청은 홈페이지에서.
홈페이지: 상시상담소(상담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