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나는 친정부모님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몸이 힘들거나 일이 있을 때는 언제든 도움 요청할 수 있는 부모님이 옆에 계셔서 너무 다행이지 싶다. 한편, 아기를 돌보느라 늙어가시는 엄마를 보면 죄송스럽기도 하다.
엄마는 아기를 돌볼 때 너무 고생스럽게 몸을 쓴다. 아기가 우는 소리에 심장이 아리다며 품 안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업고 가고, 설거지를 하거나 다른 집안일을 할 때에도 어떤 방식으로도 품 안에 안고 있다. 그런 행동이 오히려 아기를 크게 다치게 할 수 있으니 지금 잠깐 울리는 게 더 낫다고 해도 듣지를 않으신다.
내가 아기였을 때도 엄마는 똑같이 했을 것 같다. 품 안에서 재우고, 품에 안고 볼일을 보고. 아기가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지옥처럼 여겨지는 엄마. 아기는 엄마가 느끼는 그것과 매우 다를 텐데 자신의 감정에 이입돼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아기에게 과하게 몰입하다 보니 유난스러운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나는 기억한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맞았던 장면들. 수치스럽게 느껴졌던 장면들이 생생하다. 본인 희생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 나를 보며 분노했던 표정들. 그래서 어찌 보면 내가 더 지독히도 관계에서 희생을 싫어하고, 하고 싶은 만큼만, 상대에게 무엇인가 바라지 않아도 될 만큼만 하겠다는 오기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가끔 욕심이 날 때가 있다. 특히, 요리에 있어서는 나름 로망이 있는데. 맛있는 음식을 해서 가족이 함께, 즐겁게 먹는 로망이 있다. 그래서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할 때부터 나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같이 먹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는 정작 요리에 대한 부담감이 상담하다. 이제까지 해보지 않아서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도 많겠지만 시작하기 전부터 힘에 겹다. 요리를 능숙하게 한다면 재료만 준비하고 순서대로 진행하면 되겠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레시피를 보며 준비할 재료들을 구매하고, 그 재료들을 손질하고, 레시피 순서대로 요리를 해나간다. 레시피를 보며 따라 한다고 한들 내가 생각한 그 맛이 안 나오면 또 골머리를 쓰며 이리저리 양념을 쳐야 한다. 남들보다 곱절의 시간을 소비해야 요리가 완성되는 기분이다. 서툰 과정을 반복해야 능숙해질 텐데 실천하는 게 영 쉽지 않다.
음식에 대한 부담감과 로망 간의 괴리감을 이야기하자, 내 육아 멘토가 명쾌한 답을 한다.
“야, 애기가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밥 해주는 걸 좋아하겠냐? 아님 그 시간에 재밌게 놀아주는 걸 더 좋아하겠냐?’
"아, 그렇구나. ㅎㅎ그러면 노는데 에너지와 시간을 쓰고. 그러고 나서도 남는 게 있다면 좋아하는 맛난 거 해줘야겠다."
물론, 내 경우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내가 요리하는데 부담감이 없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준비를 하면서도 아기에게 쓸 에너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마음껏 해도 된다. 각자가 힘들어하는 부분, 상대를 위해 억지로 하며 소화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지점을 고려해보면 좋겠다. 무엇을 위해 행하는지. 더 나은 선택은 없는지 말이다.
ps. 할 수 있는 만큼만. 남편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한다. 나를 갉아가며, 나를 쥐어 짜가며 남편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게 아니라, 함께 기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만큼만 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남편은 이런 내 모습 때문에 서운해하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느끼는 감정은 내가 신경질 부리고 분노할 때 유발되는 감정보단 감화된 감정이 나타날 것이라 굳게 믿기 때문에 내 선택을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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