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우리는 눈치게임 중

by 박지선

밤늦게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나의 ‘할 일’을 남겨놨다. 본인 저녁 먹은 설거지와 아기가 먹은 젖병들. 이유식 식기들. 바닥엔 장난감이 뒤죽박죽 엉켜있고 지걱지걱 먼지도 밟힌다.

‘와. 진짜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네. 치사하다. 치사해.’

한정된 자원. 노동할 힘과 시간. 이를 모두 육아에만 사용하기 싫어서 서로 간 보이지 않는 눈치게임을 한다.

집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하고 싶다는 남편이 말한다. 선배들이 왜 밤늦게까지 직장에서 야근하는지 이제 알겠다고. 집에 들어가 봤자 쉴 수 없으니 일을 하든, 놀든 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누구는 쉬냐?’라는 말로 되받아치면 이혼하자는 거고. ㅋㅋ

어느 날, 아기를 재우면서 같이 잠들었다. 자정이 다 되어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건조기가 돌아가고 있고, 남편은 우리 빨래를 빨래 건조대에 널고 있었다. 이미 아기 빨래로 가득 찬 건조대에 빈자리를 찾으면서 말이다.

그렇지. 남편은 빨래를 열심히 하고, 내 옷. 남편 옷 다림질도 잘하고. 또.. 또.. 음... 뭐가 있나. 아참!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ㅋㅋ 이렇게 생각해보면 남편도 고생하는 부분이 있는데, 잠시 잠깐 내 힘듦만 생각하다 보니 지금까지 남편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기억해내지 않았다. 항상 늘어져 있는 사람은 아닌데 그것만 눈에 보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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