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에 명절에 요며칠 잠을 못 잤더니 체력이 축났다. 그 와중에 눈 뜨고 잠들 때까지 역할놀이에 푹 빠져 노는 아이의 요청 덕에 몸이 회복할 새가 없었다.
몸이 쳐지는 날에는 오히려 밖으로 더 나간다. 좁은 집에서 자잘한 놀이들을 하느라 작게 작게 많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밖에서 큰 몸짓으로 크게 크게 노는 게 훨씬 에너지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깥 외출은 아이의 기분을 매우 좋게 만들기 때문에 백프로 즐거운 시간이 보장된다.
오늘도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아이 낮잠 잘 시간에 쉴 수 있겠단 생각으로 버텼다.
하지만 아이 생각은 달랐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 아이는 놀고 싶은 욕구가 덜 채워졌는지 낮잠을 자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있나. 하지만 이를 어쩌나. 초롱초롱한 눈을 뜨고 잘 생각 없이 힘차게 뒤척이는 아이를 무작정 누워있으라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같이 산책 갈까?
내 말에 아이는 신나게 뛰어 나갔다.
아이 병원도 들를 겸 유아차를 끌고 나갔다. 운전해서 갈 법도 한데 운전할 힘도 없어서 먼 거리를 그냥 걸어가자 하고 나왔다.
병원 진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원이 있었다. 공원 안 트랙을 한 바퀴만 돌고 갈 요량으로 들어섰다. 빠른 걸음으로 트랙을 걷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걷다 보니 뛰고 싶어서 아이에게 손잡이를 꽉 잡으라고 하고 유아차를 힘껏 밀기 시작했다. 의욕이 앞서 처음부터 너무 빠르게 뛰었다. 몇 미터 뛰지도 못하고 숨이 찼다. 그때 수풀 말이 떠올랐다. 숨이 차지 않을 만큼 뛰어도 된다고. 즐겁게 뛰는 게 목표라는 누달심의 취지가 생각났다.
천천히 뛰어도 된다. 는 그 말이 갑자기 위안이 됐다.
숨을 쉴 만큼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천천히 뛰는 건 잘 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악착같이 빨리 뛰려고 하고, 얼마 뛰지 못하고 멈추는 내 몸을 형편없다 책망했을 게 뻔하다.
하지만 즐겁게 뛰는 게 목표라는 그 말. 빨리 뛰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라는 그 말. 숨차지 않을 만큼만 뛰고. 딱 500미터만 뛰라는 그 말. 더 많이 뛰려는 강박도 버리라는 그 말들이 고작 600미터를 뛰는 그 짧은 순간에도 엄청 위로가 되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머리카락 안에서 주르륵. 등에서 주르륵. 뜀뛰기를 멈추자 갑자기 소낙비가 내렸다.
힘들다 힘들다. 그 말을 입에 달고 있었는데 땀을 내며 뛰고 나니 다시 에너지가 채워졌다. 몸을 쓰고 나니 오히려 몸이 회복된 느낌이다.
내 스스로 옥죄었던 강박도 벗어던지고 몸의 에너지 흐름을 바꿔주는 운동도 했고 땀이 나니 살도 빠지겠다는 희망도 생기니 오늘 남은 시간들을 더 활기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뭔가 대단한 것을 할 필요가 없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와중에 내가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된다.
단순하게 몸을 움직여 보는 것도 생각보다 훨씬 큰 도움이 된다.
혼자 움직이려면 정말 어려우니 주변 사람들과 같이 운동하자며 온라인 상에서라도 서로가 으쌰으쌰 기운을 줘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