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아이가 아니었다면 둘 다 절. 대. 연애도 결혼도 할 사이가 아니다. 연애까지는 어떻게든 하겠지만 결혼은 절대 생각도 안 할 사이다. 일에 미쳐 사는 사람과 나는 절대 결혼하지 않는다. 일에 미쳐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다. 성인이 둘밖에 없는 이 집에 살림살이와 아이 키우기를 남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절대 결혼하지 않는다. 남편 또한 마찬가지이다. 순종적이지 않는 사람과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의 성 역할이 분명하며, 여자는 모자란 사람이고, 남녀 상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과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기분 나쁜 티 팍팍 내며 눈치 주는 사람과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희생의 무게를 항상 공평하게 나누려고 하는 사람과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고로, 우린 서로 너무 힘들다.
언제부터였을까. 남편과 좁힐 수 없는 의견차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 가는 중이다. 기대하는 바가 없어졌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아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어서 우리를 엄마와 아빠로 묶어주고 있다. 아이를 위해 우리는 각자 그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일에 미쳐 있는 남편에게 별다른 요구나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중에는 자정 넘어서 들어오고 주말에는 늦게까지 잠만 자고, 기회만 되면 누워서 잠만 자려고 하는 남편에게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남편도 노력 중이다.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일요일에 기꺼이 아이와 단둘이 외출을 한다. 남편이 바라는 아내의 모습이 아닐지언정, 아내가 일요일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한다면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결혼 전에는 부부관계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연인이나 부부 상담을 할 때면 부부간 대화가, 마음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강조했다. 갈등의 요소가 있으면, 불만이 있으면 그때마다 서로 진지하게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부단히 했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한 가지 모습만 정답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부부 갈등으로 상담을 받던 한 남편은 내게 말했다. '우리 잘 지내고 있어요.' 감정적으로 공감되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생겼다. '그럴 수도 있구나. 어느 정도 불만은 눈 감고, 어느 정도 서로 이해하며 거리를 두며 지내는 것도 부부가 잘 지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구나.'
자기감정을 적절히 숨기며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 어찌 보면 부부관계가 아닌가 싶다. 외도를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정도 거리감을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도 부부관계의 모습 중 하나인 것 같다.
아직도 신기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남편이나 아내에게 더 고마운 마음이 들고,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
자유시간이 생겼을 때 남편과 단둘이 놀러 간다는 사람들.
부모님이 아기를 봐주셔서 남편과 같이 놀러 간다는 친구에게 '미쳤다'고했다. 난 절대로 단둘이 놀고 싶지 않다고. 나는 나 혼자 시간을 보낼 거라고 말이다.
난 여전히 단둘이 있는 시간은 싫다. 하지만 아이와 셋이 있을 때는 즐겁다.
예외는 있다. 상대에게 기대가 있고 그 기대가 좌절되어 혼자 힘들어한다면, 그 기대를 절대 버리지 못하겠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부부관계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각자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관계의 모습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