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똑같은 반찬도 두 번씩 만들어야 했다. 비빔국수를 먹어도 다른 가족들은 빨갛게 비벼진 국수를 먹지만, 나는 간장과 설탕으로 비벼진 하얀국수만 먹었다. 매 끼니마다 나를 위한 반찬이 따로 있었다. 자식이 나 한 명도 아닌데도 나 때문에 고생을 사서 하셨다. 엄마는 자식을 너무 귀하게 키웠다. 특히 막내인 나에게는 유독 심했다.
어렸을 때는 그게 좋은 줄만 알았다. 난 귀하게 자란 사람이라는 기분도 들어서 우쭐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쳤다. '다른' 사람도 나만큼 귀하다는 사실 말이다. 나와 같이 타인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간혹 귀하게 자란 자식들을 만난다. 성인이 된 그들의 영웅담이 얼마나 불편하게 들리는지 모른다. 집안의 장남이었던 한 남자를 만났다. 작은어머니들과 다른 손녀들이 할머니에게 얼마나 푸대접을 받았는지 떠들어 댄다. 그에 반해 본인은 얼마나 귀하게 대접받고 자랐는지 열거 한다. 참지 못해 구태여 한마디 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재미없는데요. 동생들이 얼마나 속상했을지, 그 모습을 보는 작은어머니들도 얼마나 속상했을지 그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네요."
자신이 누리고 있는 편의 뒤에 누군가의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게 답답하다. 자신이 원래 잘난 놈이라 받는 대접이 아니라, 이전의 잘못된 관습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게 멍청해 보인다.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없는 태도가 (혐오스러울 정도로) 싫다.
사춘기 때, 심리학 공부를 처음 할 때 부모 원망을 무지하게 했다. 부모에게 직접적인 비난도 서슴없이 해댔다. 이후 상담을 받으면서 부모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는 공감적으로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는지 느끼게 되었다. 부모가 나에게 했던 과오를 나 또한 내 자식에게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그냥 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상황이 공감이 되니 부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애잔함이 밀려왔다.
나의 감정만 돌봐주느라 엄마는 많이도 아팠겠다 싶다.
돈. 살림. 육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성인 두 명이 함께 책임져야 하는 부분인데 그 모두 내 몫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함께 감당해야 할 부분이지만 서로에게 떠넘긴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경우를 드물게 본다.
“차라리 내가 힘든 게 낫지.”
그런 사람은 둘 중에 한 명이 편하면 나머지 사람이 힘들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상대를 진심으로 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참 쉽지는 않다. 그리고 둘 다 같이 힘듦을 짊어지는 경우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애석하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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