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부부로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산지 꽤 됐다. 내가 너무 우울해서 힘들다고.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너만 힘들다 말하지 마라. 다들 힘들게 산다.’고 남편이 말했을 때부터 이미 난 마음을 접었다. 그전까지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 안 한 게 아니었기에 미련도 없었다. 이제는 남편에 대한 기대감은 전혀 없다. 그 뒤로도 남편은 기가 막힐 사건들을 뻥뻥 터뜨렸지만 나는 남편에게 화를 내지도,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나 혼자 삭이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나를 푸대접하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함께 지내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아이 때문이다. 아이가 아직 어리기에 남편과 함께 지내기를 선택했다. 10년만 참고 살자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 처음에는 고역이었다. 열 받고 따지고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참다 참다 내가 속병이 나겠지 싶었다. 혼자 술도 마시고, 친구들에게 하소연도 많이 했다. 사람들에게 남편 욕하면서 마음을 다 잡았다.
남편을 바꾸느니 나 혼자라도 정신차리고 살자는 생각으로. 어차피 자식 때문에 사는 거 우리 아이가 이 집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생각으로 남편을 웃으며 대하고 상전 모시듯 살고 있다. 한 달, 두 달 지내다 보니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하나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매사 신경전을 벌일 때보다 편안한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그보다 나쁜 것은 확실이 아니다.
결혼 초반에 집안일로 신경전을 할 때, 감정이 상할 때 누다심이 내게 그랬다. 부부 관계에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움직이라고 말이다. 내가 먼저 나서서 집안일이든 궂은일이든 떠맡아서 하게 되면, 자연스레 고마움을 느끼는 상대방도 같이 움직일 거라고. 그렇게 선순환을 만들어 함께 살 생각을 해야지, 누가 먼저 하냐 마냐 하다가 갈등만 일어나면 누구에게 득이 되냐 했었다. 맞는 말이다 했지만 내가 실천할 수 없는 영역이라 했다. 나는 그만한 그릇이 못된다 생각하고 포기할라 했다.
선순환의 목적은 아니었으나, 어차피 자식 때문에 살 거, 자식이 느끼기에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더 많이 움직이는 것을 선택했더니 그나마 남편 또한 파렴치한은 아니라서 가끔씩 고마움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느껴지기도 하다.
선은 선을 일으키는 게 맞기는 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