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여자가 더 희생한다는 억울함

by 박지선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부부의 모습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공평한 삶.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을 나누지 않은 그런 공평한 삶을 살고 싶었다. 나를 평등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 마음 이면에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여자의 더 많은 희생을 바라고 성차별적인 구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오빠는 남자라는 이유로 혜택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해왔다. 아빠는 남자라는 이유로 더 편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으로도 무책임한 남편 대신해 일도 하고 살림도 하고 자녀도 돌보는 엄마가 불쌍해 보였다. 엄마는 본인이 못배워서 그렇게 밖에 못 산다고 했다. 넌 손에 물 묻히지 말고 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오빠한테는 시키지 않는 집안일을 내가 안 했을 때는 혼을 냈다. 그때부터 화가 나 있었다. 남자, 여자의 역할을 나누며 여자가 남자를 떠받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억울했다.


난 절대로 여자라는 이유로 더 많은 희생을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시댁은 당연히 챙기고 친정은 어쩌다 챙기는 불합리한 상황에서 내 목소리 내며 동등하게 대우받게 해줄 거라 다짐했다.


그렇게 다짐하며 살았던 내가, 지금은 영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맛있는 요리를 해서 가족들 먹이는 게 기쁘기도 하고, 내 일은 거의 하지 않은 채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데도 화가 나지 않는다.


결혼 전의 나같았으면 같이 있는 주말에도 왜 내가 애도 보고 밥도 차리냐며 억울해 하고 나는 평일에 놀고 먹는 줄 아냐며 분노했을텐데 묵묵히 내 일을 그냥 한다.


요즘 내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이전에는 성차별적 프레임으로 여성을 피해자 자리에 위치해 놓고 부부의 모습을 조망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관계라는 틀 안에서 부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나 스스로 피해의식에 찌들어 이상한 프레임을 갖고 살며 살림이라는 것 자체를 하찮은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일이 마음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기면 그다지 분한 일이 아니게 된다.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일.


누군가는 마음을 쓰느라 돈을 사용하고
누군가는 마음을 쓰느라 시간을 내고
누군가는 마음을 쓰느라 함께 눈물 짓듯이
살림 또한 그냥 마음을 쓰는 것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배우자가 어떤 태도를 지닌 사람인지 상관없이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하기를 결정했기에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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