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용서하는 것이 어려워

by 박지선

고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타인에게 미안한 일을 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놀다가 혹은 형제와 놀이를 하다가 친구나 형제가 울게 되면 어른들은 우리에게 사과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럴 때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이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해 나가게끔 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게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건들을 겪게 되는데, 이런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때 피해를 입은 사람을 피해자, 피해를 입힌 사람을 가해자라고 칭하겠다. 몇몇 심리학자들은 피해자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서 “용서”라는 개인 내적 측면을 언급해왔다. 자신에게 상처가 될 만한 사건을 경험 한 후, 특히 외상 경험을 한 후에 가해자를 용서를 하는 것이 피해자 스스로가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용서를 ‘정서적 용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피해자가 용서 못하는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이고 친사회적이며 사랑에 기초한 타인 지향적인 정서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가해자에게 복수와 회피를 하지 않고 관계 회복을 위해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겠다고 결심을 하는 것을 “결정적 용서”라고 부른다.

어떤 경우, 나를 위해 정서적 용서를 하게 되더라도 가해자와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정서적 용서와 결정적 용서를 구분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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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게 되는 경우에 둘의 관계가 다시 좋게 유지되기도 하고 혹은 관계를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게 되어서 피해자의 부정적인 감정이 해결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어떤 이유로 발생하게 되는 것인지 이를 검증하기 위해 진행된 연구가 있다.

이에 대해 아래의 연구자들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잘못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고의적인지 아닌지, 혹은 큰 잘못인지 작은 잘못인지), 그리고 피해를 입은 사람의 자존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을 하였다.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피해자에게 ‘너의 자존감이 낮아서 가해자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는 거야!’라며 피해자 탓으로 돌리려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타인의 큰 잘못에 대해서는 두 자존감이 모두 높은 사람조차도 가해자의 잘못에 대해 용서하기 어렵다는 것이니 무조건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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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될 때 개인이 경험하게 되는 심리적 손상을 줄여주는 완충 역할을 하는 변인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몇몇 연구 결과에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더 공격적이고 비난에 대해 더 방어적인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여, 자존감에 대해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며 “명시적 자존감”과 “암묵적 자존감”으로 분류하였다. 명시적 자존감은 의식적인 자기 평가로서 자기 가치, 승인에 대한 의식적 느낌을 말하고, 암묵적 자존감은 비의식적이고 자동적이며,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으로 얻어진 정서적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명시적 자존감과 암묵적 자존감 중에 누가 더 좋고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불일치가 일어나는 것을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불일치의 종류를 유형에 따라 나누었는데,


불일치하는 높은 자존감(방어적 자존감): 명시적 자존감은 높고, 암묵적 자존감은 낮은 경우를 말하며, 타인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불일치하는 낮은 자존감(손상된 자존감): 명시적 자존감은 낮고, 암묵적 자존감이 높은 경우를 말하며, 속으로는 자기에 대해 높이 평가하나 겉으로는 위축되어 있는 모습이다.


본 연구자들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861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서적 용서 척도”, “결정적 용서 척도”, “자존감 척도”, “이름 철자 및 생일 숫자 선호 검사”를 실시하였다.

“이름 철자 및 생일 숫자 선호 검사” 란 암묵적 자존감을 평가하는 척도로 사용되는데,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 이니셜과 생일 숫자는 자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다른 글자나 숫자에 비해 그 이니셜과 생일 숫자를 얼마나 더 좋아하느냐가 자기에 대한 암묵적 태도를 반영한다고 한다.

연구 절차는 다음과 같다.
연구 참여자들에게 시나리오(내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를 읽게 한 후, 나에게 피해를 입힌 가해자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지(정서적 용서와 결정적 용서)를 평정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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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결정적 용서를 하는 경우에는 자존감의 수준과 유형에 따라 집단 간의 어떠한 차이도 없었다, 다만 지각된 가해자의 잘못의 크기에 따라 달랐는데 즉, 가해자가 나에게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 용서를 덜 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서적 용서에서는 자존감의 불일치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불일치하는 낮은 자존감”일 때, 즉 암묵적 자존감은 높은데 명시적 자존감이 낮은 집단에서는 가해자가 작은 잘못을 해도 정서적 용서를 해주는 경향성을 덜 보였다.


예를 들어, 팀별 과제를 하는 상황에서 다른 팀원이 성실하게 하지 않아서 나까지 낮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면 "불일치하는 낮은 자존감"의 사람들은 다른 팀원이 아무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고 해도 쉽게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측건대, 낮은 점수를 받게 되어 나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목표가 무너졌을 가능성이 있고, 이런 사건은 그들에게 큰 좌절로 다가왔을 것이며, 그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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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큰 잘못이나 범죄에 대해서는 용서를 하기는 어려울 수 있고, 그때 느꼈던 불편한 마음을 없애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 용서, 즉 가해자를 용서하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노력을 하는데 자존감에 따라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피해를 입었을 때 내가 느낀 부정적인 감정은 자존감의 유형에 따라 해소하기 어려워지기도 하는데, 위와 같은 상황처럼 나의 위태로운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입게 되어 쉬이 감정을 풀지 못하는 것은 불일치하는 낮은 자존감을 형성하고 있어서 그러하다. 물론, 성실하지 않은 팀원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사건에 비해 좀 더 큰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면 나를 돌아봐야 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내가 유지하고 싶은 긍정적인 모습이란 위태롭고 금방 사라질 외적 기준일 가능성이 높다. 즉,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지 못 해서 야기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혹시 긍정적인 내 모습을 유지하고 싶은데 그 욕구가 충족이 되지 않았을 때 남들보다 크게 좌절하고 분노하는가? 분명히 말하자면, 우리의 건강한 자존감은 외적 기준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얼마나 괜찮은 사람으로 지각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외적 기준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닌, 나의 내적인 부분(감정, 생각 등)이 얼마나 수용 받고 이해받느냐에 따라 나의 건강한 자존감, 건강한 자아상이 형성되는 것 같다. 내적으로 건강한 자존감이 형성될 경우, 타인의 실수나 잘못이 나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객관적인 행동에 근거한 타당한 감정을 느끼게 되며, 관계를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상대방에게 과도한 비난을 하게 될 것이고, 아무리 잘못이나 실수를 한 사람이라도 상대방으로부터 타당하지 않은 비난을 들을 경우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게 되어, 나의 자존감을 유지하려다 되려 관계를 망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건강한 관계를 맺고 싶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나의 자존감에 대해 체크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체크 또한 혼자서는 불가능하니, 관계 안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자.




위의 논문은 '과학자-전문가 준비반(월요일 오전)'에서 신다혜님이 발표하신 다음의 논문을 근거로 하고 있음.
김성찬, 임성문 (2015). 가해자가 사과했을 때 지각된 가해자 잘못과 용서의 관계: 자존감의 조절효과. 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21(1), 9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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