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남자 형제와 거칠게 놀았던 나는 섬세하고 세심한 부분들을 발달시키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섬세하고 감성적인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왜 그런 특성을 발달시키지 못했을까’ 아쉬울 때도 있지만, 거친 애정표현을 주고받으며 자란 기억들이 내게 웃음을 주기도 해서 위안이 된다.
나의 형제인, 우리 오빠는 내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귀신같이도 잘 알아서 그 행동만 골라서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장난은 이어졌는데, 어느 날 내 베개를 베고 있는 오빠의 사진을 문자로 받은 적이 있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냄새나는 오빠가 내 이부자리에 살을 비벼대면 내가 얼마나 싫어하지를 알기 때문에, 밖에 나가 있는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진을 찍어 보낸 것이었다. 아주 쾌활하고 야비하게 웃는 오빠의 사진을 보고는, 진심으로 짜증이 올라왔지만 웃음도 나고 힘도 났다.
그런 사진을 보고 무슨 힘이 난다고 했는지 나도 참 웃기기도 하지만, 사람이란 그런 것 같다. 내게 특별한 사람. 다른 관계보다도 더 특별하고, 소중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를 봤다. 전체적인 내용은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있는 남자 주인공 ‘윌(맷 데이먼)’이 어떤 연유로 해서 상담자 ‘숀(로빈 윌리엄스)’에게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게 되는 내용이다. 주인공 윌은 양아버지의 학대와 빈곤 속에서 자랐는데, 그로 인해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반항적이고 거칠게 살아가고 있었다. 숀은 그런 윌의 마음속에 상처받기 두려워하는 여린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윌에게 다가간다.
윌과의 상담 장면 중에 숀이 아내와의 추억, 아내가 방귀를 뀌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신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나 또한 마음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숀의 대사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나 됐는데 그런 기억만 생생해. 멋진 추억이지. 그런 사소한 일들이 말이야. 제일 그리운 것도 그런 것들이야. 나만이 알고 있는 아내의 그런 사소한 버릇들. 그게 바로 내 아내니까. 반대로 아내는 내 작은 버릇들을 다 알고 있었지. 남들은 그걸 단점으로 보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너도 완벽하지 않아.”
서로의 부족한 모습을 보듬어 주며 채워주는 것이 사랑이고 관계라고 설명해주며 친밀한 관계에서 또다시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다른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소소한 버릇까지 서로 알고 있고,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일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가까운 사이. 그런 관계에서 느껴지는 수용받는 느낌. 그게 바로 사람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영원한 내 편의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 상황에 맞춰 내 뜻대로 내 방식대로 생각에 잠겼었다.
이전에 <굿 와이프>라는 드라마에서도 로펌 대표를 맡고 있는 ‘서중원(윤계상)’이 ‘김혜경(전도연)’의 가족들이 자녀의 안전상 문제로 서로가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며 대략 이런 대사를 했다.
‘혜경이 가족을 보니까 부러웠어요. 나도 오늘은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지, 내가 나 자신보다 그 사람을 더 걱정하고 싶은, 아낄 수 있는 그런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외롭다는 마음’이 드는 건, ‘살아가는데 지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이렇게 특별한 사람, 특별한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특별한 관계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 즉 내가 일을 하는 이유, 내가 건강을 챙기는 이유, 내가 행복해야 할 이유들이 그 관계를 통해 생기기 때문에. 따라서 그런 관계가 없을 때 우리는 외롭다고 느끼고, 금방 지치며, 살아가야 할 이유들이 없어지지 않나 싶다.
특별한 관계를 만드는 것은 별것인 듯 별것 아니다. 매일 어떤 생활을 하며, 누구를 만나고, 어떤 기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알아주고 공유하는 관계. 서로의 부족한 면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껴주고 보듬어 주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어쩌면 이미.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어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해원 박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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