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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an 29. 2022

마음에게 묻는 말

마음 근육이 약해진 내게

검정고시학원을 운영하며 사람들을 만나온지 벌써 17년이 흘렀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만난 사람의 수가 어림잡아 7천 명이 넘는다. 그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동안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작으나마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학교 밖으로 나오는 청소년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고 싶었다. 어떤 일로든 학교 안에서 상처받고 나온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저앉지 않도록 일으켜 세워주고 싶었다. 나이가 많은 성인들에게도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찾아와 한글을 모른다는 말을 어렵사리 꺼낸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든 외래어(영어)에게 소외당하지 않도록 철자부터 시작해 읽는 법, 쓰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이 검정고시 시험에 도전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고 싶었다. 지금껏 그런 마음으로, 그런 사명감으로 살았었다. 적어도 내게 그런 사명감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그런 내 마음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학원을 운영하면서 적자를 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저소득층 청소년에게는 일정 금액을 할인해 줄 수도 있었고 형편이 어려운 한부모 가정의 가장에게도 금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런 내 대견했었다. 나는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이었다.


코로나가 터 첫 해, 적자가 누적되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곧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해를 넘겼다.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황이 속되자 마음은 초조해졌고 여유가 없어졌다. 겨우 몇 명의 학생이 등원하는 상황. 주변에선 그냥 학원 문을 닫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와 충고가 이어졌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이 깊어갔다.  그렇다고 학원 운영을 접을 수는 없었다. 내겐 나를 믿고 등록 그들의 학습을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그들의 검정고시 준비를 책임질 의무가 주어져 있었다. 적자 운영은 어디까지나 내 사정일 뿐이었다. 떻게든 버티기로 했다. 때가 되면 코로나도 물러갈 것이고 버티다 보면 좋아지리라는 희망에 기대기로 했다.


그런 희망도 해를 넘기며 한계에 달했다. 위드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내 마음에는 누적되는 빚에 대한 불안감과 앞날을 계획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무기력이 쌓이고 있었다. 불안과 무기력은 모든 상황에 대해 적절하게 판단하고 대응하는 에너지까지 소진시켰다.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났고 예전 같으면 흔연스럽게 넘길 일에까지 오래도록 마음썼다. 


작년 어느 날, 학원비를 깎으려고 흥정을 계속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 어머니는 돈이 있는 집 안주인 같았다. 유명한 해외 브랜드 옷을 입고 있었고 들고 온 가방도 마찬가지였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기에 영어는 자신 있다고 강조하며 그 말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자신의 해외여행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졸업장만 없을 뿐 자신이 가진 상식은 대학 졸업한 사람 못지않다는 말을 했다. 삼십 분 가까이 고개를 끄덕여가며 들어드렸다. 마음은 이미 등록을 받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였지만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일은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그 어머니는 학원 문을 나섰다. 주차장에서 나가는 것을 내려다보니 승용차도 외제차였다. 학원비를 깎으려고 이 말을 했다 저 말을 했다 하는 그녀에게 깎아드릴 수 없는 이유를 최대한 완곡하게 밝히고 돌려보낸 뒤,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생각하면서도 어이없는 마음에 씁쓸해졌다. 그리고 어머니를 잊었다.


며칠 전, 그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 그때보다 더 낮은 금액을 얘기하며 다른 학원에서 그 금액을 제시했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 학원으로 가시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집에서 우리 학원이 더 가까우니 우리 학원으로 다니고 싶다는 것이었다. 길거리에 뿌려지는 기름도 아깝다고 했다. 학원비 조정은 안 된다는 입장을 정확히 밝혔다. 그러자, 봉사한다 생각하고 헌 책이라도 좀 달라고 했다. 그냥 집에서 혼자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런 파렴치한 여자가 있나, 싶었다. 렇게 사나 싶었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비싼 해외 브랜드 옷과 가방을 사는 것일까, 싶었다. 마음 같아선, 너무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전화를 마무리하고 그 번호를 수신거부로 설정하는 것, 감정 노동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그것뿐이었다.

 

하루 자고 나면 잊힐 일이지만 그날 밤 나는 화를 삭이지 못해 밤늦도록 깨어 있었다.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허우적댔다. 봉사를 강요하는 사람들, 호의 베풀기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한두 번 겪어본 것 아니다.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상식 이하의 사람들로부터 더 심한 일도 겪었었다. 그때 나는 씩씩했었다. 자존감도 높았었다. 폭력과 폭언에 굴복하지 않았고 나름의 정의감으로 의연했었다. 선의가 가진 힘도 믿었었다. 내게 부여된 소명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것을 받드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었다.


요즘은 사소한 일도 그냥 넘기지를 못하는 나와 직면할 때가 잦다. 때론 정말 깊이 마음 써야 할 일에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이 일을 놓을 때가 된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는 더 이상 이 일을 해선 안 된다.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마음 근육이 약해졌는데 다시 키울 에너지가 내겐 없다. 자긍심도 소명의식도 사라졌다.


마음에 생긴 긴 어둠의 터널에 갇혀 날마다 내게 묻는다. 그동안 소명의식이라 믿었던 내 마음이 결국 공명심과 허영심은 아니었는가. 코로나가 끝나고 상황이 안정되어도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묻고 또 묻지만 대답할 수가 없다. 이 봄이 긴 어둠의 끝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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