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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an 18. 2022

놓을 수 없는 사랑, 놓지 않는 삶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문학동네」를 읽고

이 지구 상에서 생명에 가해진 폭력이 어느 한 지역, 한 시대에만 국한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폭력의 주체는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런데 유독 국가가 개입한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몰랐거나, 모른 체했거나, 살아야 해서 말할 수 없었거나, 잊고 싶어서..... 등의 이유로 시간 속에 묻는 경우가 있다.


한강은 '여기 묻어서는 안 될 일이 있어요'라며 폭력을 상기시킨다. 어둡고 춥고 커다란 그늘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곳은 4.3의 제주이다. 그 그늘 안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현지인 여성들에게 가했던 성폭력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한 여성이 만주에서 당했던 폭력이 만들어낸 그늘을 끼워 넣는다. 시간과 공간만 다를 뿐 그 그늘들은 한결같이 음습하다. 삶을 짓밟고 육신과 영혼을 망가뜨리는 것마저 똑같아서 셋을 나란히 놓아도 경계 없이 자연스러운 실루엣이 만들어진다.


폭력은 그런 것이다. 어디서든, 언제든, 인간을 망가뜨리는 것. 정도만 다를 뿐이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본질은 같다. 폭력은 단절되지 않는다. 폭력은 순환하는 물과 같아서 한 지역, 한 시대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떠돌아 결국 우리에게도 도달한다. 단단하게 얼어붙었다가도 녹아서 흐르고, 때론 가벼운 눈이 되어 우리 곁에 맴도는 물처럼 끝없이 순환한다.


그러면 세상의 폭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억하는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 것이다.

참담하고 보기 힘들어도 눈 돌리지 않고 제대로 봐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한강은 그렇게 말한다.


세월이 많이 지난 탓일까? 아니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일까? 잔인하게 삶을 짓밟은 폭력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녀는 결코 핏대를 세우지 않는다. 열변을 토하지도 않는다. 주먹을 불끈 쥐게 하거나 주체치 못하는 눈물을 흘리게 하지도 않는다. 다만 궁금하게 만든다. 더 알고 싶게 만든다.


'아.. 그때 무서운 일이 있었구나. 그 일을 더 자세히 알아야겠구나. 어떤 일이든 우리가 눈을 감으면 안 되겠구나. 바라보기 힘들다고 그들의 고통에 눈감으면 안 되겠구나. 나도 한강처럼 그들과 작별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이 소설이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무겁지 않고, 개인 가정사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가볍지 않은 것은 한강이 가진 필력 때문이다. 그녀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등장시키지 않는다. 적재적소에 알맞은 소품을 배치하여 빈 공간을 채우고 인테리어를 완성하듯 모든 소재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 메타포를 극대화시킨다.


그 메타포를 이해하고 나면 보이기 시작한다. 한강이 왜 이 소설을 두고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고 했는지.


웅크리고 사는 엄마를 증오했지만 결국 가슴 뻐근해지는 사랑을 느꼈던 인선. 광주에 대한 소설을 쓴 뒤 트라우마에 갇혀 유서를 쓰고 찢기를 반복하며 여름을 버텨내고, 삶과 화해하지는 않았으나 살아보려 한 경하. 친구 사이이지만 둘은 각자가 가진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립되어 있었다. 스스로 선택한 고립이었는지 사회가 만든 고립이었는지 모른다. 이제 그들의 영혼은 보이지 않는 실에 연결돼 이어진다. 다친 영혼을 알아보는 또 하나의 다친 영혼에 의해.


외딴섬 제주, 그 섬에서도 중산간 지역에 고립되어 있는 인선의 집. 제주를 고립시키는 폭설이 내리던 날, 새를 살리기 위해 눈발을 뚫고 인선의 집으로 가는 경하. 눈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길. 그 눈길을 헤쳐가는 경하. 단전과 단수. 고립 가운데서도 더 깊고 어두운 고립이 계속되는 만만치 않은 여정은 그때의 제주를 연상시킨다.


인간을 이어주는 것은 비단 육체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경하는 어둠에 갇힌 인선의 집에서 인선의 영혼을 만난다. 인선의 아버지가 감옥에 있으면서도 제주 바다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인선이 병원에 있으면서도 경하 곁에 머물 수 있는 것은 바로 영혼의 교감 때문이다. 경하는, 영혼과 영혼이 만나 주고받는 교감을 통해 제주 4.3의 진실과 인선 부모님이 겪은 고통을 알게 된다. 인선의 봉합한 손가락 마디에 쇠바늘을 찌르고 새로운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러운 제주의 진실. 묻어두고 못 본 척해버리면 영원히 모르는 채로 살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일들, 그래서는 안 될 일들에 대해 듣게 된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친 사람들의 이야기,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그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던 이들의 이야기만큼 효과적인 충고가 또 있을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 매일 밤 유서를 쓰고 찢기를 반복하는 삶도 살아야 할 이유가 필연처럼 주어진다면 더 이상 작별 준비를 안 하게 되지 않을까.


그 밤, 인선이 경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한강의 소설 "흰"에 나오는 그 한 마디가 아니었을까.


어떤 이는 삶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은 '사랑'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삶의 '의미'라고 한다. 무엇이든 하나를 붙잡을 수만 있다면 목숨과 작별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인선 부모님이 겪은 고통을 알게 되고, 인선이 하고자 했던 일이 인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면서 경하는 비로소 삶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선다. 어둠을 밝히던 전깃불이 나가고 인선이 들고 있던 촛불마저 꺼져버렸지만, 자신이 불꽃을 지녔음을 경하는 안다. 이제 불을 켤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라는 것도 안다. 아주 여린 새의 날갯짓 같은 불꽃이지만 그녀는 그 불꽃을 가슴에 안고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작별하지 않고서.


제주의 그날과 작별하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세상의 폭력과 작별하지 않기 위해......

경하는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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