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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Sep 02. 2022

사랑, 그 무거운 진리

   매미 소고

매미가 울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지는 산속으로 발을 내디디자 세상의 소리들은 흩어지고 산의 소리가 귓가에 모여들었다. 산의 소리는 어둠과 정적 속에서 더욱 크게 공명된다. 어두움이 내리기 시작한 산길. 둥지로 날아드는 산새들의 날갯짓과 바람에 나뭇가지 부딪히는 소리가 어스름 산길에 울려 퍼졌다. 그런 소리를 다 덮어버릴 듯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세상의 모든 생명의 울음소리는 구슬프다. 그런데 어째서 유독 저 생명의 울음이 짠해지고 저 소리의 우렁참에서 연약함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이라는 세월을 축축하고 어두운 땅속에서 웅크리고 살며 땅 위로 나갈 준비를 하는 매미의 한살이를 알고 난 뒤 갖게 된 마음이다. 그 한살이를 모를 때 매미의 울음소리는 한적함과 평화로움의 상징이었다.


햇볕 쨍쨍한 여름 한낮에 키 큰 느티나무 아래 드리워진 그늘, 그 아래 놓인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장기를 두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 간드러지게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는 무더운 여름날의 풍경을 감미롭고 나른한 풍경으로 바꿔주는 배경음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다. 그러나 매미의 한살이를 알게 된 이후 그 울음소리는 처절하고 지독한 멜랑콜리가 되어버렸다.


성충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숨죽여 살다가 밝은 빛 속에서 사는 것은 불과 한 달 남짓이란다.  이 세상에 생명으로 오는 모든 것들은 필시 그 이유가 있을진대 매미는 무엇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는 것일까. 오로지 종족 번식의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일까. 밝은 세상으로 나와서 머무는 짧은 기간 동안 그 미물이 느끼는 자유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밝은 햇살, 부드러운 바람, 시원한 빗줄기, 그리고 달콤하고 신선한 나무 수액. 그것들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오로지 종족번식을 위해 열심히 날개를 비벼대며 밤낮을 보내고 비로소 짝을 찾고 사랑을 나누고 알을 낳고 장엄하게 떠나는 그의 주검.


한 생을 저렇게 장렬하게 살다 간다면 아쉬운 것도 없을 테지만 나는 한여름 귀청을 때리는 매미소리에 가슴이 철렁해지곤 한다. 긴 시간을 땅 속에서 웅크리고 산 이유가 오로지 종족번식을 위한 것이라면 그 견뎌낸 인내의 시간이 터무니없이 길지 않은가.


매미는 사랑이란 게 기나긴 인고의 시간 뒤에야 얻을 수 있는, 한 생을 걸어야 비로소 쟁취할 무엇이라는, 그 무거운 진리를 알리러 오는 전령사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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