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6_4 이것저것 맘이 시키는 대로

나를 조각하자

by NA

구석구석 다니는 버스는 저녁 8시면 끊긴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난 뒤, 나는 새로운 교통수단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러다 카카오맵에 있는 자전거 길찾기에 눈이 갔다. 근처 식당이나 마트를 찍어 보니 버스 배차 간격이 긴 데다가 기숙사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거리가 꽤 있어서, 자전거를 타는 게 버스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거나 더 빨랐다. ‘뭐야? 자전거 개꿀이잖아?’라는 생각이 즉각 머릿속에 떠오른 나는 당근을 켰다. 나는 제주도의 왼쪽에 살고 있었는데, 제주도의 오른쪽에서 괜찮은 자전거를 거래하시는 분이 있었다. 자전거로 시간을 찍어 보니 4시간 20분이 찍혔다. ‘뭐야 생각보다 탈만하네?’싶었다. 다음 날이 휴일이었기도 했고, 7시쯤 거래 장소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니 열심히 타서 11시~12시쯤 기숙사에 도착하면 완벽하겠다 싶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거래를 마치고 나니 하늘이 너무 예뻤다. 푸른색과 붉은색 빛깔이 아름답게 변하는 하늘을, 비행기 꼬리가 가르고 있었다. 너무 평화롭고 행복했다. 자전거에 올라타서 한 시간을 발을 굴리기 전까지는. 뭔가 이상했다. 카카오맵이 40분이면 간다는 거리를 한 시간이 되도록 가지 못하고 있었다. 군대 이후로 한 학기 동안 운동을 쉰 터라 체력도 점점 빠져갔고, 허벅지는 아파오고, 발은 점점 무거워졌다. 설상가상으로, 휴대폰 배터리도 (또!)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카카오맵 기준 4시간 20분 진짜 어림도 없겠다는 걸 깨닫고, 급하게 중간 지점인 서귀포 시청 쪽에 값싼 숙소를 하나 잡았다. 잠시 쉬다가 다시 발을 굴렸지만, 휴대폰 배터리는 이제 빨간색이 되었고 안장 높이가 안 맞아서인지 자세가 엄청 불편했다. 반 년 만에 운동을 해서 그런지 배도 점점 고파왔다. 운이 좋게도 가다가 편의점을 발견하여 보조배터리를 하나 사고 저녁으로 사과를 한 알 사먹었다. 몇 십 분을 다시 발을 굴렸다. 이제는 안장 높이 때문에 자세가 불편한 것이 엄청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재밌게도(그때의 나에게는 전혀 재미있지 않았지만) 그 자전거 안장은 육각 렌치로 풀어야 안장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형태였다.


몇 달 만에 하는 운동으로 주린 배가 사과 한 알로 채워질 리가 없었고, 요상한 자세로 허리가 점점 아파왔다. 건너편에 숙박업소와 식당을 같이 하는 듯한 집에 들어가서 혹시 밥을 먹을 수 있냐고 여쭤봤다. 주방을 마감하셔서 힘들다고 말씀하셔서, 혹시 육각 렌치가 있냐고 여쭤보니 감사하게도 있다며 나에게 육각 렌치를 빌려주셨다. 안장을 조절하고 나서, 깜깜한 어둠을 향해 다시 페달을 밟았다. 시간은 10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막막한 앞길은 두 배가 남아 있었다. 절대 못 가겠다 싶어서 급하게 서귀포 시내에 숙소를 예약하고 다시 움직였다. 손을 까딱할 힘도 없었을 때, 눈앞의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멈췄고, 운이 좋게도 버스에 사람이 별로 없었고, 운이 더 좋게도 측은지심을 가지신 기사님을 만나서 버스로 서귀포 시내까지 이동하며,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날의 교훈을 바탕으로 이후에는 장거리 자전거를 탈 때는 항상 휴대폰 풀충전에 보조배터리를 소지하고 이동했다.


급하게 잡은 숙소라(그리고 비싼 숙소를 잡고 싶지도 않아서) 2인 1실의 호스텔이었다. 어느 나라 분이셨는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암튼 외국인 분이 방에 계셨다. 얘기를 몇 마디 나눠 보니 여행 겸 놀러 오셨다고 하셨다. 맥주를 좀 사 와서 나눠 먹으려고 했는데, 내일 스쿠버다이빙을 하신다며 극구 거절하셔서 혼자 맥주를 깠다. 스쿠버다이빙은 어떠냐고 여쭤 보니 서양인 특유의 과장을 곁들여* 바닷속이 너무 아름답다고, 너도 꼭 해봐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거 고정관념인 거 아는데, 그리고 맞는데, 개인적으로 내가 마주쳤던 서양인들은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텐션이 높았다. 그리고 대부분 평가에 거품이 좀 있었다.)


뭐 아무튼, 카구리에 맥주를 때린 덕인지 몇 달 동안 안 쓴 몸을 잔뜩 써서 지친 탓인지 눈을 붙였다가 뜨니 아침이었고,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기숙사까지 돌아왔다. 카카오맵의 자전거 예상 시간은 몇 달 만에 자전거 안장에 앉은 내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은 채로.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 자전거를 잘 끌고 숙소까지 온 덕에 제주도 생활 내내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키운 체력은 후에 얼렁뚱땅 전국 일주를 떠나는 단초가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Ep.06_3 이것저것 맘이 시키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