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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Jan 16. 2019

[책 추천] 정유정, 7년의 밤

완벽한 구성과 묘사, 그리고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소설

[강력한, 책 추천] 정유정 작가의 소설, 7년의 밤 


    

이 소설 한마디로 완벽하다.

완벽한 구성과 묘사, 그리고 제 역할 다하는 인물들의 등장





리얼리티가 넘치는 분위기와 장소(배경) 묘사, 각각 인물의 서사와 캐릭터 구축, 몰입감  넘치는 서사 전개,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깔끔한 문장, 결말을 향해 총집결되는 짜임새. 완벽하다




작가: 정유정 장편소설
출판: 은행나무  출판
발행: 2011년 3월 첫 발행

분량:  523쪽




7년의 밤

마치 등장인물 오영제가 매년 창조주처럼  만들어내는 조형물(나뭇개비 건축물)처럼 잘 짜여진 하나의 완성된 그물판 같았다.


어떤 이야기도 틈새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오영제가 지하 작업실에서 매년 1년 이상의  시간과 집중력 인내심을 발휘하여 나무를 잘라서 다듬고 말리고 붙이면서 기나긴 시간 조형물 작업을 완성 하듯이 작가는 몇 년 동안 사전작업을 아주  많이 한 거 같다. 마치 세령 마을에 들어가 살고 있는(작가 스스로 이장님이라 칭함) 것처럼 그리고 세령 호수에 안개를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세령 마을이라는 곳이 진짜 있는 것처럼, 댐 관리실에 대한 정보도 너무 너무 많고 실감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박범신 소설가님이 모두 해 두었다. 이에 여기에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뒤돌아보지 않는 힘 있는 문장과 압도적인 서사 그리고 정교한 취재를 기반으로 한 생생한 리얼리티가 여성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여러 문학적 함정들을 너끈히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7년의 밤은 강력한 전사로서의 그녀가 가진 영향을 총체적으로 보여  준 결정판처럼 읽힌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 내장된 다양한 인간 군산과 인간 본질을 이만큼 생생하고 역동적인 이야기로 결집해내는 것은 문단의  아마존이 아니고선 성취 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약한 현대인들을 섬세한 내면을 감성적 이지지에 의존해 표출해 온 내면화 경향의 '90년대식  소설'들이 아직 종언을 고하지 않고 있는 현 단계에서, 정유정이 보여 주는 문학적 성실성 역동적 서사 통 큰 어필은 새로운 소설의 지평을 여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녀는 괴물 같은 '소설 아마존'이다


정유정 소설을 완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것을 이제야 읽었다는 데에 매우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렇게 구성, 배경, 인물 구축이 탄탄한 소설을 만나다니.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책의 인용 구절을 몇 개 나열해 본다. 중반 이후에는 소설의 이야기 흐름에 빠져 있느라  인용구절에 밑줄 그음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 작품의 구성이 참 맘에 든다. 전체 틀은 '나(최서원)'의 서술자 시점로 진행이 되면서,  '나'가 모르는 상황, 맥락, 사건 등을 마치 액자 속 이야기처럼  '승환'을 서술자로 두고 진행하는 소설 속 소설 구조가 아주 이상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살면서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을 더욱 진실되게, 구석구석 만나는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장치로, 사건(이야기, 각  인물의 서사 구조)을 진행하는 방식이 아주 맘에 든다.


자 그러면, 소설 읽으면서 초반에 밑줄그었던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22쪽,


목이 꽉 막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목젖 안에 무덤에 생겨난 기분이었다


[서원이가 아저씨와 통화가 이루어졌을 때. 그 반가운, 두려움, 놀람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68쪽, 


그의 아틀란티스는 황폐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쓸쓸하면서도 매혹적이었다 단 한번의 조우로 그의  영혼을 송두리째 홀려 버렸다


[세령호수가 생기면서 침몰된 물속 마을을 살펴보는 승환이의 설렘을 표현하고 있다]



90쪽,
오영제가 1차 공판에서 패소한 날 변호사는 금붕어가 상어를  잡아먹었다는 말만큼이나 희한한 얘기를 들려 주었다 그의 인생에서 들어온 본 적이 없는 말이 됐다 "우리가 졌어요"



91쪽,


그의 세계도 저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명령대로 그가 정한 규칙 대로 정연하고 질서  있게 불과 석달 전까지도 하영이 사라진 건 지난 4월 말이었다



97쪽,


그녀는 전화를 끊고 돌아보며 대꾸 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피가 몰리는 걸 느꼈다 당신은 알  것 없어요라는 말로 들렸다 다시 버르장머리를 교정해줄 시기가 됐다고 판단했다 호 대기 할 작정이었다 남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무엇인지 저  멍청한 여자가 비교적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오영제의 제왕 군림적인 폭력이 무너지는 상황을 오영제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오영제가 '교정'(마치 치과에서 치아를 교정한다는 의미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정신적 물리적 폭력의 의미를 성멸하고  있다]

118쪽 


현수는 한 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1초 어쩌면 1초도 되지 않을 짧은 시간 영원처럼  느껴지던 긴 시간, 그의 어깨와 소망과 생애 전사가 부서지던 시간에 찾아 온 세상에 고요를. 고요 속에서 뛰어 오르던 서운해  비명을.

119쪽


안개를 뚫고 지나가면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냄새를 맡았다 짠냄새 바다냄새 냄새는 기억의  방아쇠를 당겨 따 달빛을 받아 핏빛으로 일렁이는 수수벌판. 수숫대 위로 불어오는 바닷바람 벌판 끝 바위 산 너머에서 희끗 거리는 등대 불빛  아버지의구두 와 랜턴을지고 걸어가는 소년

266쪽


현수는 수술 벌판을 맨발로 걷고 있었다 한 손엔 아버지의 구두를 한 손에는 랜턴을 키고  키 큰 수술 그늘 밑 걸었다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수습을 파는 달빛을 받아 붉게 타 오려고 동네에선 개들이 짖어 됐다 동네 계란 개는 모조리  다를 보고 찢어 되는 것 같았다 그놈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21번 들으신 다음 구두 한짝을 내던졌다 수면을 치는 둔탁한 마찰음이 올리자 잠들어  있던 눈물이 깨어났다 남자의 목 쉰소리가 그를 불렀다 현수야 현수야 나머지 한짝도 내던졌다이거나 먹어 먹고 그 입 닥쳐 우물은 시커먼 입으로  구두를 날름 삼켰다 이번엔 소녀의 목소리가 속삭여 왔다 아빠

267쪽
12살 시절 그를 지배했던 우물에 대한 기억이 없다 수술  벌판을 떠나면서 되어 버린 줄 알았던 꿈속의 악령이 어따 용팔이는 전령사에 불과했다 그의 인생을 깨부수러 진짜가 돌아온  것이었다

등등등

책의 모든 내용을 인용하고 싶다. 


또한 순수한 우리말 (특히 부사어의 쓰임)은 얼마나 기가 막힌지 모른다. 책의 후반부  어디쯤에서 쓰인 '애면글면'(약한 힘으로 애쓰는 모양)의 사용.


정유정 작가, 정말 우리 한국 문학사에서 길이 남을 (특히 문체와 이야기 얼개를 짜  나가는 방식 면에서), 독보적인 멋진 작가님이다.


이 소설의 중심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아버지의 폭력, 딸의 죽음, 복수, 그리고  자식을 지켜내는 또 다른 아버지, 그리고 살인자의 아들과 소설가 조력자, 그 모든 이들의 각 자의 이야기이자 함께 연결된 이야기다... 그리고  아주 자세한 이야기 소개글은 생략한다. 왜냐면... 이 또한 다른 읽는이의 몫이라 여겨서. 


나는 이야기 흐름도 좋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즉 장소의 특징, 배경 이미지, 섬세하고 집요한 심리 묘사, 냉철한 인물  분석 등이 경이롭다. 소설 속에서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접근하는 방식도 좋고.


암튼 읽어보시라, 읽어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충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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