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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Jan 15. 2019

[인터뷰 & 소설 작법]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책 리뷰_ 소설을 쓰고자 준비하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

[인터뷰 소설 작법정유정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책 리뷰_ 소설을 쓰고자 준비하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




이 책은 소설을 쓰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소설을 쓰는 모든 과정에 대해서 말하고자 소설가정유정이 자신의 작품을 직접 인용하면서(직접 소설을 쓴 과정을 설명하면서) 인터뷰한 내용이다. 


나는 정유정의 광팬에 가깝다. 그녀가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들과 그녀의 가치관에 거의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이 책도 그렇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밑줄 긋고 싶은 심정으로 탐독하고 말았다. 


정유정의 소설은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인간의 내면(심연)에 숨어 있던 악한 본성이 어떻게 살아나는가를 잔인하리만큼 세밀하게 보여 준다. 배경, 상황, 심리, 갈등, 절정, 장면에 대한 묘사가 기가 막히다. 그렇게 묘사된 언어들이 실감나는 시각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그런 점들이 그녀의 소설 <종의 기원>, <7년의 밤>, <28> 등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 책에서는 그녀가 소설(이야기) 속에서 구축하고자 하는 세계, 인물의 내면, 서사의 핵심, 그리고 그 이유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소설 쓰기를 소망하고 있는 사람에게 아주 긴요한 책이다. 그녀의 영업 비밀(창작 기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녀가 지금껏 써 온 작품들을 예로 들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이미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다. 읽었던 작품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함께 작가의 해설까지 들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등단하기까지의 과정. 2부는 소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의도, 세계, 가치관 등에 대한 이야기로 심도있게 다루었다. 3부에서 6부까지는 소설 작법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마지막은 에필로그와 참고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작가의 등단에 관한 이야기로, 언제부터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어떻게 등단하였는가, 가족과 남편에 대한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인터뷰 내용이 상당히 현실적이고 재밌다. 


내가 처음으로 ‘내 집’을 본 날이 그 집으로 이사하던 날이었으니 말 다했지. 왜 그랬느냐고? 집 보러 다니기가 귀찮았다. 나는 뭘 안 하는 걸 좋아하고 남편은 뭘 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거다. (p.17)


2부에서는 이야기란 대체 무엇인가, 작가는 왜 그 이야기를 하는가에 대한 심도 높은 답변이 기술되어 있다. 


나는 이야기를 ‘은유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p.38) 이야기의 대부분은 (가상적인) 누군가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즉 ‘나’가 아닌 타인의 문제다. 그런데도 현실 속 나의 문제처럼 강렬하게 집중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공감능력 때문이다. (...)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우리 뇌의 거울 뉴런이고 이를 통해 이성적 공감과 감성적 공감이 작동한다. (...)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허구의 타자에게 공감하며 자기 자신을 그에게 이입시킨다. ‘거기’에서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로 인식하고 실제처럼 반응하는 거다. (p.39)


인간은 뛰어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의 활동으로 이야기를 좋아한다. 즉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듣는다. 타인에게 들려주기도 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스스로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래서 타자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공간은 이야기의 홍수로 넘쳐 난다. 가히 이야기의 동물(호모픽투스)답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의 무대, 이야기의 극장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야기 그 자체인 소설은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훌륭한 도구인 셈이다. 거기에 언어의 미학적 감동까지 선사하니, 최고의 도구가 아닌가 말이다. 


3부는 이야기를 만드는 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정유정 작가의 창작 기밀이 드러나 있다. 


[소재 찾기]

영감이 오길 기다리지 마라. 끊임없이 질문하라. 


“소설적 질문들이 되풀이되다 보면, ‘어떤 질문’이 턱, 걸린다. 그것이 소설을 시작하게 만든다.” (p.84) “<7년의 밤> 후반부에서 서원은 세령호에 갇힌 채 세령이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놀이를 한다. 그 부분은 꿈을 통해 얻은 장면이다.” (p.99)


[개요 짜기]

소설을 시작하는 여섯 가지 질문으로 개요를 작성하라. 

1. 등장인물은 어떤 사람들인가 (인물들의 기본적인 성격, 성향, 관계 파악)

2.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3. 그들은 왜 그것을 원하는가

4.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성취하는가 

5.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6.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에 대한 것들은, 작가의 몇 작품을 상황에 맞게 인용하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인용된 작품을 모두 읽은 사람들은 그 이해가 아주 수월했을 것이며, 읽었던 작품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즐거움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실감이 났다. 


[자료 조사]

아는 게 없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초고를 쓰기 전에 두 번째로 할 일이 자료조사다. 기본지식을 위해 필요한 서적, 자료 등을 찾아 읽고. 전문 지식을 위해 전문가 인터뷰, 기관 방문 등을 해야 한다. 방문 시에는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고 질문 목록을 작성한다. 간단한 스케치 도구를 가져간다. 전문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방문해야 한다 등의 조언도 아낌없이 기술되어 있다. 


“작가는 자기가 만드는 세계에 대해 신처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세계에선 파리 한 마리도 멋대로 날아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p.112)


[배경 설정]

소설 속 시공간은 하나의 세계다. 자신이 잘 아는 곳(배경)을 쓴다. 필요한 공간만 설정한다. 필요하면 스케치를 꼼꼼하게 한다. 


“소설은 반드시 ‘그들의 세계’를 근거지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 그곳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 속 세계는 곧장 내적 개연성과 결부되기 때문이다.” (p.122)


[형식; 장르, 시점, 구조, 내적 규칙] 


이야기에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 중요한 것은 자신이 쓰려는 장르를 잘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장르든 간에 필요한 장치와 문법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상황에 따라 독창적인 변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p.139)  정유정 작가의 소설들은 이렇다. <7년의 밤>과 <종의 기원>은 범죄스릴러. <28>은 재난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모험소설. <내 심장을 쏴라>는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다. (p.142)


서프라이즈(놀라움), 서스펜스(극적 긴장), 극적 아이러니, 시점 등에 대한 설명도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등장인물]

그들에게 고유의 임무와 위치를 부여하라. 캐릭터를 구축하는 일이다. 

주인공의 조건, 적대자의 조건, 주요인물과 주변인물의 분류, 배치 등등 재밌는 이야기가 아주 많다. 그녀의 작품 중에서 소설가 기질이 뛰어난 캐릭터에 대한 답변, 사랑하는 캐릭터에 대한 답변도 재치가 넘친다. 


4부로 넘어가 보자. 초고를 쓰는 일이다. 초고는 어차피 90프로를 버릴 원고라 여기며 일필휘지로 빨리 쓴단다. 초고에서 버리지 않는 부분이 시작과 결말이라면. 나머지는 주인공의 삶을 구축하면서 이야기의 진실과 작가가 전하려 하는 주제를 따져 보는 일이다. 자신의 직관을 믿고, 어떤 사건을 절정에 배치할까 하는 문제가 가장 큰 일이다. 


“주인공의 실패인가, 성공인가, 아니면 아이러니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주인공의 삶은 이야기가 시작될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어야 한다.” (p194)


5부에서는 1차 수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장면이 필요 없다면 과감히 지워라. 그 세계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선택에 조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작성하는 이유. 서술에 대한 기본적인 창작법을 아낌없이 방출하고 있다. 


이제 6부 탈고로 넘어가자. “이제 원고를 거꾸로 읽어보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낯설게 하기’인데 생소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아주 좋은 방식인 것 같다. 떡밥 회수에도 유용하고. 깜박 잊어버린 인물들을 찾아낼 수도 있다고 한다. 오타, 오문을 찾기에도 유용하다고 한다. ‘안 본 눈’이 절실할 때 적절하게 활용된다고 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이 책의 저자 지승호(인터뷰어)의 정유정 작가와 소설가에 대한 거의 찬양에 가까운 찬사가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독자입장에서는 그의 찬사가 전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유정은 정말 압도적인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페이지(263)에는 이 책에 인용된 참고도서 20여권의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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