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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Jan 17. 2019

[영화 리뷰] 내 심장을 쏴라

자작나무 숲에서 수명이와 승민이는 자신들이 갈구하는 삶을 돌아본다

내 심장을 쏴라 Shoot Me in the Heart, 2014 


_ 자작나무 숲에서 승민이와 수명이는 자신들이 갈구하는 삶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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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문제용

배우: 이민기(류승민 역), 여진구(이수명 역)

개봉: 201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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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책을 읽으면서 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생각했다. 책은 아직 구하지를 못해서. 영화를 먼저 봤다. 오래 전에 이 영화를 보았었다. 그런데 그냥 재밌게 봤다 정도의 기억만 남아 있었는데. 정유정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시 보니. 자유를 향한 그들의(승민과 수명, 그리고 정신병원에 있는 몇 몇의 눈빛과 조력의 행위 등) 몸짓을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소설 <내 심장을 쏴라>는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 당시 심사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평가(극찬)를 받았던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만큼의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다만 잘생긴 이민기의 풋풋하고 재기발랄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과 유머가 넘치는 인물들의 어울림을 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야기는 수명의 나레이션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수명은 '세상 밖으로'나가기 위한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서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신병원에서 만난 승민이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만남, 탈출, 그리고 '자살 방조'라는 이름으로 그를 도와 준 얘기까지.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 나가기 까지 수명은 긴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평생 수용되어 생애를 마칠 수도 있었는데(아버지의 유언으로). 그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고, 스스로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선택하도록 길을 이끌어 준 친구가 있다. 물론 그 친구는 지금 그의 곁에 없다.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활강장을 떠난 승민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에게 그렇게 하늘을 나는 일은 죽음이 아니라 '그답게 사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수명은 기꺼이 그 길을 도와줬을 뿐이다. 그것처럼 자신 또한 스스로 '그가 누구인지, 그 답게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 나선 것이다.  


영화 속 정신병원의 사람들은 무겁고 아프고 불안하기보다는 나름의 유머와 유쾌함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슬프다거나 불편하거나 하는 감정보다는, 아 저들은 저들의 세상에서 나름의 패턴이 있는 삶을 사는구나, 지지하게 된다.  


특히 주인공 승민이의 무모한 듯이 보이는 탈출 과정을 보면. "분투하는 청춘들에게 바칩니다" 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그대로 전달된다. 망막이 훼손되어 완전히 시력을 잃을 수도 있을텐데. 별빛이 쏟아지는 바다 같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그의 비행은 무모하지만 절박하고 아름답다. 그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읽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승민이를 연기하는 배우 이민기의 연기와 표정, 대사, 그리고 헤어 스타일은 정말 잘 어울린다. 그냥 승민이기 이민기인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묻어 있다.  


그리고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다. 

자작나무 숲이다. 그 하얀 나무 기둥과 까만 눈썹같은 옹이들. 이국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 숲에서 승민과 수명이가 대화를 나누던 장면. 망막색소변증을 앓게 된 과정, 패러글라이딩에 집착하는 이유 등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 승민이.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점차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수명이. 


그런데 이 영화 수명이에 대해서는 좀 불친절하다. 그의 가위공포증, 폐쇄증 등에 대한 고통을 몇 장면의 교차 편집과 나레이션으로 모두 처리한다. 그의 성장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서사가 미흡하다. 그래서 아무래도 관객 입장에서는 수명이의 아픔과 변화, 그리고 성장에 대한 몰입이 쉽지가 않다. 그저 조금은 유쾌한 휴먼 드라마에 머물로 만 것 같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한다고 하면 이제 좀 말리고 싶다. 그녀의 소설적인 언어와 묘사의 치밀함, 그리고 그에 더해진 독자의 상상력을 영화적인 언어와 연출이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거리감을 배우들의 연기와 장면들이 채워주기는 하지만. 역부족인 면이 많은 것 같다.  


['내 심장을 쏴라' 영화의 한 장면, 수명이가 자작나무 숲에서 승민이와 대화를 마치고 걷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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