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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Jan 18. 2019

[제14회 세계문학상 대상 장편소설] 스페이스 보이

책리뷰_우주소년이라고? 아니 현실 속의 삶과 사랑에 대한 보고서지!

[제14회 세계문학상 대상 장편소설] 스페이스 보이   


책리뷰_우주소년이라고? 아니 현실 속의 삶과 사랑에 대한 보고서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드는 생각   


책을 중반쯤 읽을 때까지 ‘스페이스 보이’라는 제목에 의심을 품었는데 책을 끝까지 다 읽으니 알겠군. ‘스페이스 보이’라는 제목이 나쁘지 않았어.   


그래서 주제가 뭐라는 거지? 그래 이것도 마지막 장 ‘11월 30일 겨울의 문턱’을 끝까지 읽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일이었군.   


“그래요. 이 엿 같은 지구를 돌아가게 하는 건 사랑이죠.”

“아니, 지구를 돌아가게 하는 건 지구 중심의 자기장이야. 하지만 너의 말도 맞아. 그게 없었다면 네가 사는 지구는 진작 파멸했겠지. 아무튼 확실히 우리가 잘못 판단했어.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너도 똑같은 인간이었어. 언제 우리 존재를 발설할지 모르는 나약한 인간 말이야. 그럼 이 모든 기억을 지우는 조건으로 너의 죽은 세포를 되돌려준다. 이런 쉬운 길을 너무 돌아왔다고.” (228쪽)   


기억을 지우지 않고 사는 일은 잔인한 일이다. 

서술자 ‘나’는 우주 체험을 하면서,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이 아닌 자신의 ‘뇌’ 속에서 일종의 기억 재활 체험을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를 지구로 돌아온 후 4개월 간의 ‘꼭두각시’ 같은 시간을 보낸 후에야 깨닫는다.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잊어버릴 것들은 잊고. 지워야할 것들은 지워버리는 보통의 삶. 일명 세속적인 삶. 그 세속적인 또는 속물적인 삶이 사람을 얼마나 인간답게 하는지. 더 나아가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지를 깨닫는다.   


꼭대기(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져 봐야 아는 삶.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져서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아픈 사람이 되어 봐야 아는 삶. 그게 지구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세 문장으로 정리를 하자면.   


서술자 ‘나’의 일기로 기록되는 독백은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속물적인(또는 대중의 심리) 이야기를 실감나게 전달하는 문체적인 특징을 보여 주며.   

그래도 이 지구 상에서 보통 사람처럼,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리고, 속물적인 욕심을 부리면서 사는 것이 우주 공간을 떠도는 일보다 더 나은 삶이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그리고 지구에서 펼쳐지는 ‘연예인’ 또는 ‘꼭두각시’ 만들기의 여정은 가히 치밀하고 ‘실화’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것.      


▶간략한 줄거리 소개   


7월 30일. 

‘나’ 김신은 모든 기억을 잊기 위해 우주로 떠난다. 

현실로 돌아가는 것만큼 구역질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우주 공간은 어쩐지 생각했던 곳이 아니고. 온통 지구 그 자체인거야.

모든 것이 익숙한 것들로 보이는거야.

그러고 보니. 나는 나의 ‘뇌’ 속에 있는거야. 

외계인이라고 하는 은발 노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능력자야. 

2주가 지났지만. ‘나’는 실제 우주 체험이라기보다는 ‘뇌’속 체험만 할 뿐. 외계인에 의해 그저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던 우주의 무한한 능력만을 확인하고 돌아온다.    


8월9일. 

지구로 돌아온 김신.

그는 지구에 돌아오자마자 우주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TV스타로 만들기 위해 기획사가 총출동하고. 온갖 시술을 다 동원하고. 그는 우주를 다녀온 경험 그 하나로 최고의 연예인이 되고 만다. 자의하고 전혀 상관없이. 그렇게 꼭두각시의 삶을 살다가 3개월 이상을 정상(?)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민심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 

나는 건방짐 그 자체. 비아냥거림 삐딱하게 말하기. 제대로 진상 떨어 보인다. 연예인 노릇에 염증이 생길대로 생긴 까닭이라.   


11월 7일.

떨어지는 낙엽보다 더 빠르게, 비에 젖은 낙엽보다 더 초라하게, 공든 탑이 무너진다. 

‘나’에 대한 대중의 호감 지수는 그대로 비례하듯 비호감 지수로 치솟고. 

마지막으로 외계인이 준 통찰력을 넘어서는 예지력을 발휘해 봅니다.    


11월 18일.

그렇게 천기를 누설한 죄로 갑자기 시작된 어지러움은 뇌경색을 일으키고 쓰러지게 만든다.

아프니까 인간이 된다고. 

그렇게 제정신이 번쩍 든 김신.    


11월 30일. 

단지 우주 이벤트에 초대된 인간일 뿐이었었는데. 오히려 지구에 돌아와서 너무 과장되고 허황된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문장 다시 읽기   


“언어의 한계란 사고의 한계” (21쪽)   

우주에서는, 외계인들은 사고 또는 세계의 한계가 없기에 언어에 있어서도 한계가 없는 것일까. 그저 생각만 하면 모든 것이 언어로 읽힐 수 있는 것일까.

작가는 이런 문장을 반복하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중력은 휘고, 공간은 왜곡되고, 시간은 변형되지.” (23쪽)   

어쩌면 우리의 사고 속에서 재생되어 말하는 오래된 기억들은 ‘휘고’, ‘왜곡되고’, ‘변형된’ 것들은 아닌지. 책을 읽으면서 이 문장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했다.       


“스페이스 보이, 외계인을 얕보지 말라고.” (58쪽)   

나는 점점 더 외계(또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게 되는 것 같다. 스티븐 호킹의 저서들을 읽으면서도,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에 이 지구 같은 환경이 ‘딱 여기’만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페이스 보이’로 지칭될 수 있는 우리 ‘지구인’을 어디선가 외계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인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 문명을 초월하는 또 다른 문명 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이 독서의 후유증. 이제 지구 아닌 외계의 세상에 대해서 급격한 호기심을 가질 것만 같다. 또는 내 기억과 내 뇌의 왜곡이 또 다른 ‘외계’, ‘우주’ 등을 상상하고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당장 로또에 당첨돼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진짜 좋아하는 일이래요” (135쪽)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이 직장일이 진짜 좋아하는 일일까? 아니면 로또를 사고 1등에 당첨이 돼 봐야 알 수 있는 일일까? 흐-음. 흐      


▶이 책을 다시 누구에게 줄까   


처음엔 우주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어린 친구에게 줄까 했고. 중반부 읽으면서는 연예계 진출에 대한 환상적인 포부를 지니고 있는 연기 지망생에게 줄까 했었는데. 혹시라도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대중문화의 이면, 연예인의 생태계에 대한 환멸을 느낄까봐 보류하기로 했다. 후반부 읽으면서는 사랑에 실패한 성인 남녀에게 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기억을 잊기 위해, 지구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우주로 떠난다는 것은 ‘도망’이라는 것 밖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한 어떠한 기억도 지우지 못하고는 살 수 없는 일이다. 기억을 안고 가식적이고 도식적이고 짜여진대로 사는 것은 그 자체가 환멸일 뿐. 결국은 잊어버릴 일은 잊어버리고. 도망치려던 모든 것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깨지면서 사는 일. 그게 아름다운 지구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니. 오늘도 직장인으로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렇지만 사랑이 두려워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 우리 사무실의 젊은 동료에게 이 책을 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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