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찻잎향기 Jan 19. 2019

[책리뷰  '몫'  미메시스  테이크아웃 시리즈]

책리뷰_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온 듯한 핏빛 어린 살갗의 문장들을 읽다


[책/  몫/  미메시스  테이크아웃 시리즈]



테이크아웃 시리즈


테이크아웃은 단편소설과 일러스트를 함께 소개하는 미메시스의  문학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 동시대 문학을 이끌어가는 젊은  작가와 본인만의 개성이 있는 일러스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한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한국 문학  시리즈입니다.  


이런 류의 책을 만난 경험은 처음입니다.  손 안에 들어오는 사이즈가 책 같기도 하고 수첩  같기도 하고,  묘하면서도 낯익은 매력을  선사합니다.  




최은영 작가 


<쇼코의 미소>로 강한 인상을 받았던 최은영 작가입니다.  그래서 선뜻 이 책의 서평단 리뷰에  신청했구요.  그런데 역시나,  단편에 대한 리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단편소설은 짧은 이야기 구조 속에 단단한 껍질 같은  또는 굵은 씨알이 들어 있는 듯한 견고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훅 들어오는 슬픔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황스럽습니다.  단단한 슬픔.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겹겹이 방어벽이 있어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사연들.  그래서 단편은 쉬운 듯  어렵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회 문제,  그 상황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사람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  송곳의 날카로움에 찔리는 기분.  그런 기분이 듭니다.  




언닌  그대로다.


정윤의 얼굴에 미소 비슷한  것이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너도  그래.


그렇게 말하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대로라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라는  말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한다고,  그  사실이 내 눈에 보인다고 서로에게 일러 주는 일에 가까웠다. 정윤은 그 또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새치를  염색하지 않은 데다 얼굴에 화장기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얼굴 자체에 배인 피로가 그런 인상을 강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당신의 눈에는 그때의  정윤이 보였다.  (11쪽)




간만에 만난 사람들의 멋쩍음.  어색한 웃음.  ‘그대로’라는 말 속에 전하는 진심과 또 그만큼의 거리감.  그리고 낯선 분위기가 주는  피로감.  단편은 그렇습니다.  짧은 몇 문장 속에 아주 많은 이야기를 농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장 하나 하나를 읽어내는 마음도 그  이상으로 피곤해집니다.  그런 피로감이 또 중독처럼 글 속에 빠지게  합니다.  단편을 끊어내지 못하는 불편한  중독입니다.  




당신은 누구일까


이 글 속에 등장하는 당신은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  이입니다.  


이 글의 화자.  아니면 또 다른 화자의 자아.  당신에게 고백하는 듯한 화자의 문체는 우리를 관찰자  입장으로 거리를 두게 합니다.  




이건 일개 여성 문제가 아니라  대학원 사회의 기형적인 권력 구조에 관한 문제입니다.  


정윤은 용욱의 말에 그렇게  답했다.


지금의  당신은 생각한다.  그런  말은 언제나 힘이 있었다고.  이건  여성 문제가 아니다,  더 큰  억압의 문제다,  라는  식의 논리는 언제나 강했고 다수를 설복할 수 있었다.  정윤이  자신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논의조차 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정윤은 수면으로 올려놓고자 노력했다.  정윤이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더라면 희영의 주제는 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20쪽)






글을 쓴다는 게  무엇일까?


심장을 아주 콕콕 찌르는 듯한 몇 개의 문장을  만납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달랐겠지만.  (...) 그 집에서 한 밤을 자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당신은 희영의 여린 얼굴을 떠올렸다.  그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외로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60쪽)






대학교 편집부 활동,  사회부 기자,  저널리스트 등 이 글을 읽다보면 음지에서 또는  양지에서 음지로 힘들게 기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연상이 됩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들의 의지와 인내를  향한 어둡고 힘겨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지극히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듯한 이상주의자들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또한 똑똑하고 글도 잘 쓰는 이들이 종종  범하는 허상과 우울함을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어둠과 슬픔을 보게  됩니다.  이 글 속에서도 말입니다.  




삶은 각 자의 선택  의지이다


한때 서로 비슷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  그러나 같은 시간이 흘러도 각자의 삶과 방향은 완전  다른 곳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가치관으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한때 치열하게 공유했던 삶을 첫사랑처럼 묻어둬야  할지도 모릅니다.  꺼내고 쪼갤수록 빛이 바래  버리니까요.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이  이야기의 중심은 어디인가?


해진,  희영,  정윤  세 사람의 삶이 그 중심이 아닐까 싶다.  서로  비슷한 공간에서 같이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이후의  선택을 통해 다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이들이  함께한 시간 이후의 삶에 대한 설명은 최대한 생략했다.  생략된  부분이 내게는 중요하게 느껴진다.  (70쪽,  작가  인터뷰에서)






손은경 그림


한마디로 난해합니다.  선인장,  숲,  도시,  건물,  사람,  콘크리트 여자 등이 연상되는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일상적인 소재에서 오는 낯익음도 있으나 과감하게  형태를 생략하고 두드러진 선과 색에 힘을 쏟은 듯한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검은색,  회색,  초록색으로 이루어진 색은  선명합니다.  특히 포인트 색으로 쓰인 초록색은 창백함 속에  도드라진 씨앗(생명,  희망 같은)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콘크리트 벽면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을 초록색으로  온기를 살짝 넣은 점도 있지만.  그러나 대체적으로 난해하고 엉뚱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깊게 넓게 퍼지는 온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은 그림 또한 견고한 슬픔이  느껴집니다.  도시 속의 외로움,  슬픔,  소외 등도 느껴집니다.  마치 글 속에서 함께 했으나 아주  다른.  그런 외로움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이 소설 <몫>  아주 짧은 내용이지만.  단단한 문장의 결 때문인지,  쉽지 않게 읽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재영  소설]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