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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Jan 19. 2019

[김재영  소설]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현실의 논리 앞에서 파괴되어 가는 것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김재영  소설]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자음과모음출판사에서 2018년 6월 11일 발행한 이  소설집은,  


김재영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김재영 작가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탐구했던 『코끼리』로 이름을 널리 알린 작가이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은 결(소재)이 다른 방향에서,  현실의 논리 앞에서 파괴되어 가는 것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첫인상은 표지가 주는 섬뜩함이다.  


분홍색,  빨간색,  초록색.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금 촌스러운 삼색의 페인트 물감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차갑고 섬뜩하다.  사과파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는다.  


그것이 이 소설집에서 상징적으로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한다면 성공했다  할 수 있겠다.  섬뜩함,  파괴,  잔인함 등을 얘기하고자 했다면.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혔는지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다.  


제목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달달한 시간?  아니면 언어 유희와 같은 중의적인  해석?  정말 감이 잡히지 않았다.  책을 펼쳐 들고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마도,  이 리뷰를 작성하는 동안에는 어느 정도는 정도가  되리라 기대해 본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이야기를 모두 다 잘 읽어내는(읽어낼)  독자는 다 읽고 난 후 머리가 꽤 지끈거릴 것  같다.  또한 이런 현실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의  힘을 믿는 독자라면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한편 출판사 자음과모음에서 2월에 발행했던,  『모서리의 탄생』에서 보이는 현실과 상처,  소멸 등을 이 작품집에서도 느낄 수가  있겠다.  모서리의 탄생이 좀더 깊게 잔인하게 상처를  파헤치고,  상처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  환경,  태생부터 불우한 상처투성이인  인간,  끝내 치유될 수 없는 상처,  그 밑바닥까지 보여준다면.  

여기 소설집에서는 마치 우리 곁에서 멀쩡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의 보통의  상처를 들여다 보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마치 내 얘기가 아닌가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말이다.     


돌이켜보면,  옛집에서  지낸 그 겨울은 최근 몇 년 중에 가장 평온했다.  (…)  무엇보다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고독한 평화가 있어서 좋았다.  이제껏  그녀가 경험한 대로라면,  인간이란  서로 다른 복잡한 내면을 가진 존재들이어서 일부러 맞추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오히려 더 다투게 되거나 사소한 오해 끝에 깊은 상처를 주고받기  쉬었다.  (24쪽.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고독한 평화.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 외로움을 견디는 노력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끼리 맞추려고 애쓰지 않는 노력.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부정할 수 없는 어느  한 장면,  그 단면을 직시하는 것 같다.  


무리한 진압을 지시한 고위급  경찰은 나중에 공사의 사장이 되었고,  총리는  ‘유감’의 뜻을 밝히는 것으로 모든  책임을 끝냈다.  미래는  ‘유감’이란 말이  ‘사과’가 아니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사과였다면,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을 차디찬 감옥으로 끌고 가진 않았을 거다.  (…)  사과하지  않는 한,  어떤  잘못을 하든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시민들은 알게 되었다.  높은  곳에서 시작된 사과 없는 문화는 점점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더 이상  이 도시에선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음료도,  사과파이도 잘 팔리지  않는다.  어이없는  참사가 반복될 뿐이다.  (39쪽,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진정한 사과를 하는 시간이다.  


‘사과’는 적어도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다.  그것이 부재된 현실에 대한  얘기,  빈번한 참사와 무한 반복되는 무책임의 사회를  질책하는 작가의 목소리.  그래.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소설 미로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한 생애가  펼쳐진다.  


이건 내가 가장 수월하게 읽은 작품이다.  다른 독자들도 이 작품은 나처럼 아주 수월하게 읽을  것이라 믿는다.  특히 ‘희’가 카지노에서 아끼던 강보 주머니를 잃어버리고 건강까지 해친 상황에서  침대에 누워 무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다가 청소하는 할머니 인디언 할머니를 만나고 위로를 받는 장면은 마치 몽환적인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이런 어둠 속에서는 어떤 꽃이든 일찍 시들고 말아.  모하비 사막으로 가봐,  아가씨.  (…)  소금기를 간직한 그 나무를 끓여 마시면 바다의 힘이  아가씨를 되살릴 거야.  (70쪽.  미로)   


작가는 제주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몇 년 전에 들어갔다가 결국은 정착하게  되었고.  제주에서의 삶과 문화,  역사적인 소재를 글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을  밝혔다.  그런 경험이 미로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굿’얘기가 나오는 ‘그 섬에 들다’에서도 신화적인 요소가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그때,  그의  사과처럼 생긴 빨간 심장이 또다시 꿈틀거렸다.  (…)  애벌레들은 어느 새 나비가 되어  있었다.  가슴을  뚫고 나온 나비들이 넓은 하늘을 향해 일제히 날아올랐다.  (251쪽.  그 섬에  들다)   


가을 냄새가 나는 어느 날.  돌고래 두 마리.  푸른 수평선을 힘차고 우아하게 자맥질 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심장에서는 나비가  날아오른다.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상상인가.     



*


전반적으로 작가의 의도(작품의 주제)는 간단하지가 않다.  쉬운 듯 쉽지 않다.  이야기가 간결하게 정리가 될 듯 될 듯 되질  않는다.  (아마도 쫓기듯 읽어서 그랬을  것이다.)   

“일상의 미로에서 벗어나려다  사막의 미로에 갇힌 셈이다”  (75쪽.  미로)   

“뜨끔했다.  그녀  말이 사실이었다.  달이  태양의 반대편으로 숨어 들어가 지구 그림자 속에서 사라지듯이 언제나 나란 존재를 숨기기에 바빴다.”  (133쪽.  특별한  만찬)   

“엄마 때랑은 시대가  달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일을 해야 직장에서 겨우 살아남아.”  (262쪽.  더  러브렛)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청춘,  비정규직,  국가의 잔인한 폭력,  사과 받지 못한 상처받은  영혼들,  그들에 대한 작가의 위로의  노래.  그 노래를 찬찬히 다시 곱씹으면서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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