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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Jan 26. 2019

[독립영화] 그리울 련. 사람은 떠나도 떠나지 않는..

연인의 죽음을 앞두고, 그 여인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남자의 심리

[독립영화] 그리울 련(戀)


연인의 죽음을 앞두고, 그 여인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남자의 심리 상태를 담담하게 들여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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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2015.08.13(부천국제영화제)

감독: 한철수

출연: 정경호(태우), 정윤선(희연), 후지이  미나(신원불명의 여인)

개요: 한국, 환타지, 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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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젊은 남녀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이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헤어져야 하는 슬픔과 아픔이 있지만, 그 흔한 신파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  과정을 보여주기에 오랫동안 생각하게 하고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연인의 죽음을 앞두고, 그 여인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남자의  심리상태를 섬세하게 보여준 아주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게 파고드는 아픔이 있는 아련한 영화이다.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더원의 노래와 왼쪽 화면에  흐르는 자막은 이 영화에서 남자(태우)가 하고 싶은 말, 남겨진 남자의 그리움, 외로움, 슬픔 등을 전달하는 메시지 역할을 한다. 그러니 혹여  이 영화를 보게 되면 꼭 엔딩을 보시기 바란다. 그것만 충실히 읽어도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서사(테마)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엔딩 크레딧에 나왔던 자막 몇 문장을 생각나는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시간을 모든 것을 데려간다

우리는 오래된 연인이다

사랑도 기억도 똑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기억도  있다.

그 기억은 날마다 우리를 깨운다

사람은 떠나도 떠나지 않는 기억이 있다.  

시간이 모든 것을 데려 갔다



연인을 보내고 돌아온, 유골함만 남은 연인을  기억하는, 혼자 남게 된 남자(태우)는 속엣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그 외로움과 그리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아원에서 자란 남자는 아무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속내를 쉽게 보이는 성격도 아니다. "축하해"라는 말만 반복하던 매사 긍정적이고 심성이 고운 사내아이였다. 죽은 연인(희연)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남자 태우 밖에 없었다. 자신이 떠나면 혼자 남게 될 태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죽음이 무섭다. 자기가 잊혀질까  두렵다. 그러면서 또한 자신이 그에게 기억될 일이 두렵다. 


그런 여자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힘들게 남은 시간을  보내면서, 결국은 남자에게 (현실적으로) 빚만 남기게 된다.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의 사진도, 물건도, 보이는 어떤 것들을 모두 버리라고 했지만.  그래서 정작 남자는 모든 것을 버리게 되었지만. 기억 속에서 여자는 어떤 것들도 버리지 못하게 하고 떠났다. 영정 사진에 쓸 사진 하나 남기지  않게 하고 떠났다. 그러나 남자는 깨닫는다. 영정 사진에 쓸 사진 한 장 없다고 그녀가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죽는다고, 남아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낼 수 있을까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것들. 그 또한 떠난 이에 대한  남아 있는 사람의 사랑이다. 기억도 사랑이고. 아픔도 슬픔도 외로움도 그리움도 모두 사랑의 다른 모습니다. 다만 그 결을 달리하여 나타날 뿐.   


하늘 높이 날던 연이 추락해 버렸다. 그러나 그 연은  추락한 것이 아니다. 날아가버린 것이다. 만약이 우리가 붙들고 있는 실타래의 끈이 현실의 인연이라면. 날아가버린 연은 죽음으로 사라진  사람(육신을 포함한 그 사람의 실존의 모습)일 것이다. 태우가 끊어져서 날아간 연을 바라보던 그 잔잔하고 편안한 미소는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에 쓰인 연(련,戀)은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희연(태우의 연인, 죽은 사람)일  것이며

희연을 그리워하는 태우의 그리움일  것이며

희연과 태우의 인연(만남, 추억, 사랑, 죽음, 슬픔  등) 그 자체일 것이다. 


여자의 이름이 "희연"이라는 것도 뜻이 깊다. 기쁨과  그리움. 즉 "기쁨을 남기고 떠난 아련한 그리움"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기쁨은 남겨진 자의 슬픔과 기억을 모두 포함한다. 죽은 이를  기억한다는 일이 슬픔이기도 하지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쁨이 될 수도 있는 일이 있으니까. 


그러나 사람을 떠나 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꿈 속의 누군가에게, 또는 알 수 없는 허상의 인물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여인은 그런 대상을 상징하는 것 같다.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나버린 알 수 없는 여자. 그 여인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태우가 깊은 잠을 자고 난 뒤에 그녀는 없었다. 그러니 꿈 속에서 만난 허상의 인물이 아닐까 싶다.  결국 영화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꿈 속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연인을 떠나 보내고 유골만 남은 상태인 현재의 시점에서 교차된 과거의  이야기가 꿈속에서 전개되는지도. 


동물원 사육사인 태우가 야간 경비를 하면서, 처음에는  오래된 (거의 폐쇄된)화장실에서 무슨 소린가를 듣고는 그냥 지나친다. 그러나 계속 찜찜하게 남아 있는 그 화장실이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그 화장실을 들어간다. (문이 열려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문이 잠겨있는데.) 어쩌면 여기서부터 꿈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속으로는 찜찜하면서도, 그냥 말없이 참고 견디고 살았던 태우가 그것을 떨쳐버리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묘령의  여자(후지이 미나)를 만난다. 


화장실에서 옷이 찢겨지고 폭행을 당한 모습으로 발견된  아름다운 용모의 젊은 여인. 그 여인을 실제로 보았을 수도 있다. 그 문이 잠겨진 화장실 안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상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나 개연성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저 태우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위로 받고 싶었을 것이다. 연인이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야 하는 시간들, 그녀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될 두려움 등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태우가 그녀(묘령의  여자)를 붙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은 마음 안에 품고 있던 두려움, 슬픔, 힘듦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때.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때. 그녀가 떠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영화가 좋았다. 배우 정경호의 배역에 잘 어울리는  담담한 연기도 좋았다. 잔잔하고 담백하고 여운이 남는.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이별, 죽음, 남은 이의 슬픔과 외로움이 아련하게 전달되어서 좋았다.  길지 않은 러닝타임(80여분)도 적당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지루할 틈을 안 줘요" 라는 정경호의  대사가 계속 입안에 맴도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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