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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Feb 25. 2019

[영화 리뷰] 킬링 디어 인간의 "죄와 벌"에 대한

킬링 디어 "매우 절제된, 그러나 잔인한 복수극인가?"

[영화 리뷰] 킬링 디어 "매우 절제된, 그러나 잔인한 복수극?"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2017>


이 영화 한마디로 인간의 '죄와 벌'에 대한 불가해한 방식으로 '심판'을 하는 이야기이다.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 어느 누구도 통쾌할 수 없는 모두가 비겁하고 비극이 되는, 복수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승전결- 결말을 향한 메시지는 한 줄기로 명확한데. 연출, 영상, 연기, 음향, 촬영 방식 등이  아주 기괴하다. 귀의 피로도가 매우 높다. 자극적이고 신경질적인 음악, 음향이 기괴함을 더한다. 그래서 영화 보는 내내 신경이 쓰이고 피로도가  높고 심경이 매우 불편하고 불쾌해진다.


>> 영화 개요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다수의 감독상, 작품상 등 수상)

개봉: 2018년 7월

출연: 콜린 파렐(스티븐 머피), 니콜 키드면(안나), 배리 케오건(마틴)


>> 영화 속으로


수술 중 아버지를 죽게 했다고 믿는, 담당 의사를 단죄하고 싶어하는 한 소년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서 의사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간혹 신화, 종교적인 비유와 함축이 나오지만  고스란히 그쪽으로만 연결하기에도 너무나 단선적인 전개가 많다. 비틀고 비틀어서 '성스러운 사슴 죽이기'는 이루어지는데. 어찌 보면 '가여운  희생양'일 뿐인,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한 단죄(=벌)에 대한 인간의 잔혹함에 해당되는, 너무나 가혹한 복수극으로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죄(의료 사고인지 정확하게 사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와 그 대가를 치르는  방식은 합리적인 것과 아주 거리가 멀다. 의학,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 비합리적이고 주술적인 방식에 복수심과 죄책감과 살기 위한 집착이 얹어졌다.  그래서 인간의 심리를 압박하는 분위기와 연출과 배경과 음향의 무게감이 크게 느껴진다. 


배우들 연기에서 과잉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의 절제가 더 차갑고 더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다. 결말에서 스티븐의 가족 세 사람(가족 중 한 명이 없는 상태에서)이 식당에서 마틴을 마주하는 장면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꼭 그렇게 가족을 희생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야야 하는 것인지, 많은 질문과 여운을 남기는 대목이다. 


"영화에 몰입하고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분명 히 우리 각자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감독은 설명했다. 뜨거운 기대감 속에서 영화가 공개되자 해외 매체들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완벽한 걸작!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몰입하게 만든다”(The Guardian), “거장의 솜씨로 조율된 작품”(Variety), “가장 순수하고 가장 위험한 작품. 미 친  듯이 천재적이다!"(The Playlist) 등 극찬을 통해 반드시 봐야 할 마스터피스를 예고했다.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는 감독의 명성만큼 이  영화도 화려하게 등장했다. 


영화 속 신경질적인 사운드와 예민함과 우아함을 넘나드는 클래식 음악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연출의도가 십분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 보는 내내 신경을 자극한다.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자극적인 쇠소리 같기도 하고. 음향  효과가 인물의 내면 상태, 갈등 상황, 공포스런 분이기 등을 아주 잘 드러낸다. 


웅장하면서도 클래식한 음악이 흐르던 전반부, 그리고 계속 음흉한 소리가 흐르는 중반부.  인물들의 복잡한 속내를 대사와 연기, 다이내믹한 표정 처리보다는 오히려 음향에서 그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인물의 표정은 무신경으로 보일 때가  더 많다. 의사 스티븐의 표정은 어찌 보면 담담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스티븐의 덥수루한 턱수염, 속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 그의 동요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것은 어찌 보면 소년의 아버지가 정말 의료사고로 죽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황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인간의 죄를 어떻게  가늠하고 단죄할 수 있을까' 라는 맥락과 닿아 있어 보이기도 한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있다. 물론 모든 장면들이 대체로 인상적이며  감각적이었지만. 특히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아들 밥과 아내가 병원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다. 카메라를 위에서 멀찍이  잡아서 촬영을 하고는, 거대한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듯한 구조. 마치 병원의 거대한 공간 속에 갇혀 있는 아주 작은 (인간) 존재들이  계단 아래로 내려오면서 넘어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하찮은 존재의 형상으로 보인다.  아들 밥이 다리 마비가 시작되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결국은 또 그렇게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만다. 그래서 그렇게 나약한 존재는 결국은 희생이  되어야 하는. 


영화의 원제목인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신성한 사슴 죽이기'에서 희생된 죽음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 신화, 종교가 그렇듯이 뚜렷하고 합리적인 설명은 말이 안 된다.  그저 가장 어리고 약하고 힘없는 존재가 희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슴'은 그렇게 어떤 이의 주술과 복수심 등에 희생되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과정과 결정도 인간의 비겁하고 나약한 마음에서 시작이 된다. 그런데 그 결정을 가장 죄가 많은,  죄를 지은 '아버지'인 '의사'가 한다는 것은 최고의 아이러니이다. 이 아이러니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그 과정 또한 참으로  적나라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잔인한 영화다. 보는 내내 심사를 불쾌하게 하는 영화다. 인간의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내면을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면을 이렇게 잔인하게 파헤치는, 다소 철학적이고 감각적이고  세련된 영화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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